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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의 산성(山城)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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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량산의 산성(山城)


청량산에는 산성의 흔적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데
내성인 산성, 외성인 청량산성,
그리고 이 두 산성을 연결하는 오마도가 그것이다.


산성(山珹)


△ 내성인 산성

산성은 축융봉(祝融峯) 동남쪽의 산성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 산성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왔을 때 축조(築造)된 것으로 보이며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능선위에 쌓았다.
사람이 거주할 만한 비교적 평지에 쌓은 내성(內城)이다.
현재 성터와 장대 (將臺)가 남아 있으며
산성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도굴꾼들이 순금으로 된 그릇을 꺼내 갔다고 한다.
또한 경작을 하다 보면 화살촉과 같은 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다. 《청량지》와《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산성은 둘레 2천2백79보에 걸쳐 있었으며 높고 험했다." 또한
"산성 안에는 우물 7개와 2개의 계곡물이 있어
수천의 군사와 군마를 수용할 수 있다." 고 적고 있어
산성 내에 경작지가 비교적 넓어 사람이 상주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청량산성(淸凉山城)


△ 산성 내의 갈대밭

청량산성은 청량사 유리보전(淸凉寺 琉璃寶殿) 뒤쪽의 연화봉(蓮花峯),
자소봉, 경일봉(擎日峯)일대에 걸쳐 연결되어 있고
내성(內城)인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을 방어하기 위한
외성(外城)역할을 하는 산성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협곡을 돌과 흙을 쌓아 연결한
포곡식 산성으로 1595년(선조 28)에 개축되었다는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이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석성 1곳과 건물터 2곳이 남아 있으며
산성의 규모는 도면상 3.35㎢이다.
1595년(선조28)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명에 따라
전 현감 이정회(李庭檜, 1542~1612, 퇴계 이황의 族曾孫)와
승장(僧將) 행정(行靖)이
자소봉(보살봉)의 둘레 2.092척을 개축하였다.
이 산성은 자소봉에서 경일봉을 꺾어돌아
동문(東門)은 선학봉의 절벽이 끊어진 데 있으며
북문(北門)은 연화봉 아래 있고 서문은 연대(蓮臺) 앞 협곡이며
남문(南門)은 금탑봉 북쪽 절벽에
도청(都廳) 5칸이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 청량산 연대사의 옛지도


오마도(五馬道)

오마도(五馬道)라 불리는 이 산길은
산성(山珹) 서쪽 끝 장대(將臺)가 위치한 곳에서
청량산성(淸凉山城) 동쪽 끝인 탁립봉(卓立峰)에 걸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내성(內城)인 산성과 외성(外城)인 청량산성을 연결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봉화군 재산면(才山面) 쪽을 방어하는 기능을 겸하고 있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로 평가된다.
이곳에도 성문터와 석성 등의 유구가 남아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청량지》에서는 "산 능선 주위 40여 리에 돌아가며 길을 만들어
말 다섯 마리가 함께 달릴 만하다"고 적고 있다.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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