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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의 대(臺)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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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량산의 대(臺)

청량산에는 열두봉우리와 함께 대(臺)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중 최치원의 유적으로는 독서대(풍혈대)와 치원대, 난가대가 있고
의상 대사의 의상대, 원효 대사의 원효대, 공민왕의 밀성대,
주세붕의 경유대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이 중 어풍대가 옛부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풍대에서 내산을 바라보면 산은 연꽃이고 청량사는 꽃술로 보인다.
이 밖에도 청량산에는 봉우리 곳곳에 수많은 대(臺)가 형성되어 있었다.



어풍대(御風臺)


△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는 한 송이 연꽃 속의 수술이다.

금탑봉의 중간 층에 있으며 응진전으로 가는 요로(要路)에 있다.
어풍대는 청량산의 많은 대(臺) 중에서 전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곳에 서면 청량사 터가 왜 꽃술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곳은 내외의 청량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된다.
옛부터 이곳 청량산을 찾은 명현달사(名賢達士)들은 이 길을 거닐면서
자연을 음미하고 풍월을 구가하였으므로 '어풍대'라 이름지어졌다.
이 길에는 순서대로 치원대(致遠臺), 반야대(般若臺),
풍혈대(風穴臺),
요초대(瑤草臺), 경유대(景遊臺), 화암대(華岩臺) 등이 있다.
특히 여기는 여름철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기 때문에 항상 서늘하며
최치원(崔致遠)이 공부하던 독서대(讀書臺=어풍대)가 있다.
치원대와 자하대(紫霞臺), 요초대(瑤草臺) 그리고 경유대(景遊臺) 등
네개의 대(臺)도 어풍대에 예속되어 있으나
그 자태는 각각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밀성대(密城臺, 640m)


△ 밀성대의 겨울

일명 사형대라 하기도 한다.
축융봉의 북쪽 지류에 속하는 외산 서쪽에 있으며
우뚝 솟은 바위는 산과 5m 간격이며 불규칙적이다.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이곳 청량산으로 피난을 와서 주둔할 때
죄인들을 사다리를 놓아 건너게 한 뒤
사다리를 들어 그 바위 위에서 죽게 하였다.
박종(朴琮, 1735~1793)의 '청량산 유록'에는
"청량산의 남쪽 고개에 궁전 옛터가 있고
그 밑은 천 길 절벽으로 고려왕이 피난 왔을 때
죽여야 할 죄인이 있으면 처형하지 않고 이 절벽 아래에 던졌으므로
그 아래에는 백골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날씨가 궂은 날이면 귀신의 울음소리가 난다"고 적고 있다.


풍혈대(風穴臺) = 독서대


△ 바람이 샘솟는 풍혈대

금탑봉의 중간 층에 있으며 요초대의 뒷면에 있는데
층암절벽이 남북으로 통하여 더운 여름철에도 항상 차가운 바람이 불고
그 중간에서 최치원이 독서하고 바둑을 두었다고 하나
현재는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 풍혈대 앞에는 주일암자(週日庵子)가 있었다.
"풍혈의 입구에는 판자 2개가 있었는데 전하기를
최치원이 앉아서 바둑 두던 판이라 했다."
(주세붕의 《유청량산록》 중에서)


학소대(鶴巢臺)


△ 학소대의 겨울

축융봉의 서쪽 낙동강 변에 천 길 절벽으로 솟아 있는데
낙동강과 함께 청량산을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다.
예로부터 학(鶴)이 이곳에 날아와 자손을 낳고 서식하여 왔으나
지난 1953년 봄 무장 괴한들이 이곳에 총을 발포한 후
학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고 학소대만이 쓸쓸히 낙동강을 지켜보고 있다.


금강대(金剛臺)

장인봉의 서쪽 낙동강 변에 있으며
청량산 입구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학소대와 좌우로 갈라져 있다.


만월대(滿月臺)

자소봉(보살봉) 아래 만월암 우측에 있었는데
몇십 자가 되는 대추나무가 있었다.


청풍대(淸風臺)

자소봉(보살봉) 아래 원효암 동쪽에 있는데
돌봉우리가 평평하여 4~5인이 앉을 만하다.


원효대(元曉臺)

원효봉 앞에 있었는데 몽상암 옆으로 옮겼었다.


치원대(致遠臺)

치원암 왼편, 극일암 앞에 있는데 금탑봉 중간 층의 어풍대 쪽이다.
일명 고운대(孤雲臺)라고도 하며 산세가 외로이 높아
여러 골짜기를 굽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치원대에서 자소봉(보살봉)을 보면 하나의 봉우리가 9층 석탑이다.


반야대(般若臺)

치원대 옆에 있으며 경치가 고절(孤絶)하다.


경유대(景遊臺)


△ 응진전(나한전) 앞의 주세붕의 호를 딴 '경유대'

응진전(나한전) 앞에 있다.
주세붕의 자(字)를 따서 대(臺)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주세붕이 이곳에서 '뒷날 경유대라 부르리라' 하니
주위에서 나한전 벽에다 이를 써두었다 한다.


화암대(華岩臺)

대(臺)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기타의 대(臺)

안중암(安中庵)은 최치원을 위하여
밥을 지어 주던 노파의 소상을 모신 곳으로
이 암자앞에는 채하대(彩霞臺), 자비대(慈悲臺)가 있는데
자비암(慈悲庵)의 전면에 위치하여 각기
그 특이한 풍치를 가졌으며 그 외에도 송풍대(送風臺)
그리고 의상대(義湘臺), 요초대(瑤草臺:총명수 앞에 있다)가 있다.
또한 《택지리》에는 "난가대(爛柯臺)는 최치원이 바둑 두던 곳으로
모난 돌에 바둑판 줄이 그어진 듯하다.
그 곁에 있는 석굴 안에는 할미의 상(像) 하나를 안치하였는데,
전해오는 말에는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음식을 받들던 계집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청량산의 입구 동문의 개울 옆에는 크고 넓은 바위가 있는데
앉아서 쉴 만한 곳으로 '장암(場巖, 마당바위)'이라 하는데
일찍이 퇴계가 산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쉬면서 시(詩)를 읊던 곳이다.
장암 옆에 깎아지른 암벽이 있는데 학(鶴)의 둥지가 있어
위는 희고 아래는 검은 새가 때때로 오고간다 하여
'학소암(鶴巢巖)'이라 불렀다.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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