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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의 열두 봉우리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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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량산 열두 봉우리

청량산은 옛부터 불교의 흔적이 산 전체에 남아 있던 곳이다.
이러다 보니 청량산의 봉우리들도 그 명칭이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과 같이 불교식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544년(중종 39) 당시 풍기군수이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찾아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일부 고치고 새로 짓기도 하였는데
그 명칭이 지금의 열두 봉우리의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는 주자가 여산(廬山)을 명명한 전례에 따라 주세붕이 청량산을 명명한 것이다.
이후 퇴계는 주세붕이 명명한 열두 봉을 인정하면서
이를 '청량산 육육봉' 이라 부르며 주자의 중국 무이산
육육봉과 연결시켜 청량산을 조선의 무이산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청량산은 불가의 산에서 유가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옛 선인은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하노라
- 청량산가(淸凉山歌) -





△ 아름다운 청량산의 봉우리들

경일봉(擎日峯, 750m)

연대(蓮臺, 지금의 5층 석탑 자리)의 정동쪽, 자소봉 서남쪽에 있는데
매년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연대에서 보면
해가 경일봉 정상의 한 가운데서 뜨므로 주세붕이
인빈욱일(寅賓旭日
: 동방에 해가 떠서 빛난다는 뜻)의 뜻을 취(取)하여
'경일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경일봉은 3층으로 아래에는 김생암, 상□하 대승암이 있었다.


금탑봉(金塔峯, 620m)

경일봉의 동남쪽에 있으며 옛날에는 치원봉(致遠峰)이라고 불렀다.
연대의 동남쪽 층암절벽(層巖絶壁)이 3층으로 이루어져
연대에서 바라보면 삼층탑과 같으며 중층(中層)에 치원암(致遠庵),
극일암(克一庵), 안중사(安中寺), 상청량암(上淸凉庵),
하청량암(下淸凉庵)의 5사(五寺)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응진전(應眞殿, 나한전)만이 남아 있는데
이는 외청량암(外淸凉庵)의 유적이다.
《오가산지(吾家山誌)》의 산천(山川) '대암집해(臺庵集解)'에 보면
"위에 있는 것이 상청량암(上淸凉庵)이요 그 동쪽으로 조금 아래 있는 것이
하청량암(下淸凉庵)"이라 하였으니 지세로 보아
응진전이 상청량암의 자리로 보인다.


△ 금탑봉


자란봉(紫鸞峯, 796m)

선학봉(仙鶴峰)의 동쪽과 내산(內山) 경계에 위치하며
그 모양이 마치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탁립봉(卓立峰)

경일봉 위의 바깥 뒤쪽 돌봉우리로
옛날에는 이름이 없었는데 주세붕이 새로 지었다.
내산의 주봉인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이 높이 솟은 봉우리이다.
즉 청량산의 동쪽 줄기 맨 위 뒤쪽이 탁립봉이며
가운데가 경일봉 맨 아래가 금탑봉이다.



△ 탁필봉과 자소봉


자소봉(紫○峯, 845m) = 보살봉(菩薩峰)

연대의 뒤(북쪽)에 위치하여 내산의
종주(宗主)가 되는 봉으로 돌봉우리로 되어 있다.
봉우리의 중간 동쪽에 평평한 반석으로 되어 있어
30~40명이 앉을 수 있는 터가 있어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청량산의 열두봉 중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푸른 바위가 천 길이나 높이 허공으로 솟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9층(九層)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치원대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9층 탑으로
백운(白雲), 만월(滿月), 원효(元曉), 몽상(夢想) 등
11곳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으며
봉우리의 명칭이 옛날에는 보살봉(菩薩峰)이었는데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개명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고 하며
가뭄이 들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탁필봉(卓筆峯, 820m) = 필봉(筆峯)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20~30m 지점에 봉우리 전체가 뾰족한
돌봉우리의 빼어난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
옛날에는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탁(卓)'자를 더하여
'탁필봉' 이라 하니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卓筆峯)'과 비교하였다.
또한 이 봉을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적봉(硯滴峯, 850m)

탁필봉의 서쪽 바로 옆 5~6m 거리에 탁필봉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정상이 조금 평평한 것이 흡사 연적(硯滴; 벼루의 물통)과 같으며
올라가서 보면 동남(東南) 천여 리(千餘里)의 산하(山河)를 바라볼 수 있다.
정상에는 바위가 평평하여 10여 명의 사람이 쉴 수 있다.


*자소봉과 탁필봉, 연적봉은 모두 돌봉우리로 동쪽으로부터
위의 순서대로 나란히 열립(列立)되어 있다.


연화봉(蓮花峯, 876m) = 의상봉(義湘峰)

연대의 서쪽에 있는 봉우리로 암벽(巖壁)의 층으로 된 것이
처음 피어나는 연꽃과 같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앞 뒤 봉으로 되어 있어 '전 연화봉', '후 연화봉'이라고도 부른다.
주세붕의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에는
"불가에서 말하는 '의상봉(義湘峰)'이 이것이라"하였으니
옛날의 명칭은 '의상봉'인데 주세붕이 '연화봉'으로 개명한 것이다.
이 산 중턱에 정수암이 있었다.


향로봉(香爐峯)

연화봉 서쪽에 있는 돌봉우리로 모양이 향로와 같다 하여
주세붕이 그 형상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산 아래에는 자비암, 자비대가 있었는데
자비대에서 바라보면 내산의 전경을 훤히 볼 수 있다.


축융봉(祝融峯, 845.2m)

축융봉은 연대에서 건너다보이는 남쪽에
세 개의 큰 돌이 우뚝 솟아 봉을 이루고 있는데
내산(內山)을 한눈에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주세붕이 중국의 오악(五嶽)의 하나인 남악형산(南嶽衡山)의
이름을 모방하여 '축융봉'이라 하였다.
이는 오행(五行)으로 화(火)는 남방(南方)에 해당되고 축융이란,
남방의 불을 맡은 화신(火神; 南方掌火之神)이란 뜻이다.
청량산의 여러 봉(峰)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청량사는 그 아름다움을 형용할 수 없다.
산 위에는 평평한 바위가 있으며 넓이는 4평 정도나 돼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 있다.
이곳은 흙과 나무가 전혀 없어서
항상 깨끗한 마당을 유지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판의 흔적이 보이며,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 축융봉 정상


장인봉(丈人峯, 870.4m) = 대봉(大峰)

청량산의 가장 높은 주봉(主峰)으로서
옛날의 명칭은'대봉(大峰)'이었으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이름하였다.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을 부연한 것으로써
멀리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대어 본 것이다.
주세붕의 기록에는 상세한 것이 없고
멀리서 바라보고 이름 지은 것이라 하였는데
《청량지(淸凉誌)》에는 연대의 서쪽에 외산(外山)이 된다 하였고
두 개의 석봉이 나란히 높이 솟아 중봉중(衆峰中)에 가장 크고 높은데
바깥(서쪽)에 있는 것이 '외장인봉(外丈人峰)',
안쪽(동쪽)에 있는 것이 '내장인봉(內丈人峰)'이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의상봉의 건너편 산 중허리에 물이 없는 밭에
연(蓮)이 자생하고 있으니 그 잎은 우산만하고 뿌리는 연뿌리인데
이를 강련(岡蓮, 또는 한련)이라 불렀다.
이 강련이 산에서 자생하는 일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정상에는 주위가 200㎡나 되는 넓은 면적에
배구형의 황토층 토질을 형성하여 만병초 등
각종 고산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의상봉(義湘峰, 870.4m)=장인봉(丈人峯)

옛부터 전해오기를 청량산의 주봉은 '의상봉'으로 불리어져 왔으며
현재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상봉'을 '장인봉'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의상 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의상굴'이
'장인봉'(의상봉) 아래 위치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지금도 인근 동리와 산악인들은 장인봉을 의상봉으로 부르고 있다.


선학봉(仙鶴峰 821m)

장인봉의 동쪽에 있으며 외산삼봉(外山三峰)중에서
가운데 있는 돌봉우리로 옛날에 학(鶴)의 집이 있었다 하여
주세붕이 '선학(仙鶴)'이라 이름 지었다.
또한 산모양이 마치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하여 선학봉이라 했다 한다.


기타

자소봉의 중층, 만월대 앞에 있는 작은 돌봉우리로
기이하게 빼어난 것이 예로부터 '옥소(玉簫, 옥통소)'라고 불려졌는데
주세붕이 명명한 열두 봉우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또 '원효봉(元曉峯)'은 장인봉의 아래에 있는 작은 돌봉우리로
열두 봉우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지금의 유리보전 뒤편에는 반야봉과 문수봉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이상의 열두 봉 중 옛날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금탑봉과 연적봉 두 봉우리이며, 옛날의 이름을 고친 것이 장인봉(구, 대봉), 자소봉(구, 보살봉), 연화봉(구, 의상봉)의 세 봉우리이고
이름이 없던 것을 새로 명명한 것이 선학봉, 자란봉, 축융봉,
경일봉, 향로봉, 탁립봉 등 여섯 봉우리이다.
이와 함께 옛날 이름에서 한 자를 더 보탠 것이 탁필봉(구, 필봉)이다.
이렇듯 청량산은 그 옛날 봉우리 자체가
부처와 보살의 현신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세붕 이후 열두 봉우리가 명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유불 문화의 조화로움이 아직도 각 봉우리마다 남아 있다.


△ 청량산의 운무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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