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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탈출] 경북 봉화, 정자로 쉼표 그리다.
이    름 : 부산일보 조회수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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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재 권벌의 아들 권동보가 지은 석천정사와 그 앞에 있는 석천계곡. 짙은 녹음과 맑고 시원한 계곡물 덕에 봉화 사람들이 아끼는 피서지이다.
 
경북 봉화, 경북의 오지 중의 오지라는 'BYC(봉화·영양·청송의 영어 머리글자)'에서도 으뜸이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가 봉화를 울타리처럼 둘러싸 '두메산골'이란 접두사가 예사로 붙었다. 여기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기도 어려웠고 외지 사람이 들어오긴 몇 곱절 더 힘들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봉화를 '병란과 세상을 피해 살 만한 곳'이라고 적었다. 그래서일까? 이 땅의 선조들은 '육지 속의 섬'에 정자와 누각을 세우고 한 세상을 아늑하게 보냈다. 세월과 문명은 철길과 아스팔트 길을 이 땅에 냈지만 봉화는 여전히 산 병풍에 푹 싸인 외딴 데이다. 폭양의 계절에 봉화의 속살을 핥는 일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봉화에 있는 정자는 103개. 군청에서 이름 없는 정자와 작은 누각을 뺀 게 이 정도니 개수로 따지면 단연 전국 최고란다. 담양 소쇄원 정도만 가본 사람이 봉화에 오면 입이 딱 벌어질 법하다. '정자들의 엑스포 전시장'이라 불러도 누가 뭐라 할까. 지세와 산세, 물길에 따라 정자 생김새도 가지가지이다. 이 중 청암정은 단연 봉화 정자의 상좌 격이다.

'육지 속의 섬'에 정자와 누각
알려진 것만 103개
지세·산세·물길 따라 각양각색

상좌 격 청암정 오르면 풍경 일품
석천정사·계서당 '스토리' 눈길

불가·유가서 아꼈던 청량산
걷다 보면 대가들 흔적 오롯이


닭실마을의 청암정은 조선 중종 때 문신 충재 권벌이 지었다. 충재는 조선 최대의 사화인 기묘사화에 연루돼 파직하고 봉화로 내려왔다. 그는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에 집을 올리고, 연못을 파고 냇물을 끌어들였다. 충재는 사화로 말미암은 분과 한을 집짓기로 삭혔을까? 땅에 박힌 거북바위가 비로소 물에 떴는데, 어쩌면 훗날을 기약하는 충재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기묘사화로 낙향한 충재가 지은 청암정.
청암정에 가면 정자 구경만 하지 말고 신을 벗고 툇마루에 앉아 보시길. 누각의 칸칸마다 대들보가 액자 틀처럼 갖은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은 동서남북에서 계통 없이 청암정으로 불어 댄다. 왱왱, 맴맴. 경쟁하듯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지 않고 망중한의 배경음처럼 들린다. 못에 그늘을 드리운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 손만 내밀면 잡힐 것 같은 단풍나무, 향나무 등. 사람이 빚은 숲은 자연의 숲과 달리 아기자기한 멋을 준다. 드라마와 TV 예능프로그램에 청암정이 소개되면서 고즈넉함은 예전만 같지 못하다.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에 가야 더 운치가 있다.

청암정 옆에 충재유물전시관이 있다. 충재는 기묘사화 이후 을사사화에도 연루됐다. 왕과 왕비한테 바른말을 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파를 초월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시관에는 그를 기리는 후학들의 글과 충재의 절의를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유물을 구경하고 나면 전시관 입구에 걸린 '忠'(충성 충) 자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청암정에서 논을 지나 내성천을 따라가면 석천정사가 나온다. 충재의 큰아들 권동보가 지었다. 계곡 암석 위에 올린 팔작지붕의 긴 누각이다. 솔 숲과 기암괴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계곡이 누각과 어울려 마치 조선시대판 펜션 같다. 석천계곡은 봉화사람들이 아끼는 '시크릿 밸리(?).' 누각에 앉아 아이들의 물놀이를 보노라면 한시름이 어느새 달아난다.

이몽룡의 실제 모델인 성이성이 살았던 계서당.
혹시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 봉화에 살았다는 것을 아시는지? 물야면에 있는 계서당은 인조 때 문신 성이성(1595~1664)의 생가. 계서는 성이성의 호. 계서는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해 암행어사만 네 번을 지냈다. 그의 행장에는 "계서는 불편부당, 권세에 동조하지 않고 직언을 잘했다. 평생을 청렴결백으로 검소하게 살았다"고 쓰여 있다. 그 덕에 숙종 때 청백리로 뽑혔다. 지금은 계서의 13대손인 성기호 씨와 부인 강순자 씨가 산다. 계서당이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면서 안주인 강 씨도 졸지에 계서당 가이드가 됐다. 강 씨를 따라 사랑채에 있는 계서의 방에 들어갔다. 2평 남짓한데, 작은 창과 문이 두 개다. 풍수가들은 계서당에 오면 이 방을 가장 탐낸다고 한다. 계서당 앞쪽의 용머리 산세와 문필봉의 기운이 이 방에 모여 있어 여기서 공부나 병구완을 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고 했단다. 전엔 이 방에 성이성의 어사화와 사선(암행어사 출두 시 얼굴 가리개), 서적 등이 있었지만 관광객의 잦은 절도 행각으로 지금은 다른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

예로부터 산이 깊고 물이 맑은 봉화라고 했다. 낙동강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물길과 백두대간의 산세가 만나 유명한 약수터가 봉화에 많다. 이 중 봉성면 다덕약수는 위장병피부병,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는 탄산 약수다.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밥알이 푸른빛을 띠고 찰기가 있단다. 다덕약수의 효험을 제대로 보려면 닭백숙이 좋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약수터 주변이 온통 닭백숙집이다. 약수 맛? 사이다보다 덜 알싸하지만 톡톡 쏘는 느낌은 사이다보다 더 세다. 

청량산 연화봉 아래에 있는 청량사의 전경.
다덕약수로 목을 축이고 청량산도립공원으로 간다. 전국 명산은 웬만하면 불가나 유가의 전설이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청량산은 불가와 유가가 동시에 끔찍이 아꼈던 산이다. 원효가 이 산에 청량사를 지었고,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여기서 자주 놀았다. 퇴계는 말년에 자신의 호를 청량산인으로 부르며 청량사 옆에 살았다. 그의 문도에서 청량정사(오산당)를 짓고 퇴계를 기렸다.

퇴계는 청량산을 편애했다. 수십 편의 시에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 한 시에서 퇴계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며 복사꽃이 물에 떠내려 가면 낚시꾼이 몰려 올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청량사 주차장에서 30분쯤 산길을 올라간다.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경일봉 등 청량산의 멧부리가 머리 위로 하나둘 나타난다. 산엔 모두 12봉우리가 있는데 몇몇 봉우리 이름은 주세붕이 붙였다.

청량사의 대웅전 이름은 유리보전으로 약사여래부처를 모셨다. 이 불상은 보기 드문 종이 부처다. 약사여래 왼쪽의 향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은 한 발을 단상에서 내렸다. 주지 지현 스님은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옛 기록에는 이 산의 12봉우리가 낙타 혹 같아서 타자산(駝子山)으로 불렀다. 다른 기록에는 열두 봉우리가 연꽃 같다며 청량사를 꽃 수술로 비유했다. 이 말을 실감하려면 절 건너편 금탑봉 중턱에 있는 어풍대로 가면 된다. 천 길 낭떠러지에다 골바람이 보는 이의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예서 보니 청량사가 연꽃이란 말도 맞지만 나무숲 바다에 떠 있는 기와 빛 조각배 같기도 하다. 어풍대 주변에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 약수, 신라 때 명필 김생이 9년간 글씨를 공부했다는 김생굴, 의상 대사가 만든 응진전(외청량사)이 있다. 청량사는 매년 가을에 산사음악회를 연다. 올해 개최일은 10월 5일이다. 늦가을 산사에서 듣는 가곡과 가요. 생각만 해도 벌써 청량해진다.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TIP

■교통


·자동차:경부고속도로 동대구분기점~중앙고속도로 금호분기점~영주나들목~구성오거리 좌회전~상망교차로 우회전~36번 국도~봉화교차로 좌회전~삼계회전교차로 1시 방향 진입~유곡교 좌회전 600m 진행~청암정 주차장.

·대중교통: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6)에서 안동시외버스터미널(1688-8228)로 가는 직행버스는 오전 7시부터 45~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2시간 40분 소요).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봉화공용버스정류장(054-673-4400)행 시외버스 오전 7시 35분부터 7편이 있다(50분 소요). 봉화공용정류장에서 춘양 방면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토일정류장에 내린다(약 11분 소요). 택시 요금은 4천 원가량. 부전역에서 봉화역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는 오전 9시 5분에 출발한다(4시간 45분 소요).


■연락처 및 이용안내

봉화군청 문화관광과 054-679-6341.

다덕약수관광지 054-679-6341.

충재박물관 054-674-0963.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계서당 054-673-8670.

청량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54-679-6651.

청량사 사무실 054-674-1446.


■음식

봉화의 대표 음식은 송이 요리이다. 이곳 송이는 태백산 기슭의 마사토에서 자라 다른 지역보다 수분 함량이 적어 단단하고 향이 우수하다. 매년 10월 초에 송이축제가 열린다. 봉화읍에 있는 솔봉이송이요리전문점(054-673-1090)에서 송이돌솥밥을 시키면 머위, 취나물 등 10여 가지의 산나물 반찬이 나온다. 밥알을 씹을 때마다 송이 향이 난다. 식후 송이차도 꼭 드셔 보시길. 송이돌솥밥 1만 5천 원, 송이산채비빔밥 1만 원. 전대식 기자
| 글쓴 날짜 | 2013-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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