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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 스님은 20여 년간 폐사나 다름 없던 청량사를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는 사찰로 가꿨다. | |
절을 관광명소로만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아선 안 되는 절이 있다. 경북 봉화군 청량산 청량사가 바로 그런 사찰 가운데 하나다.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도량’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절이다.
구름으로 산문 지은 도량
청량사 주지 지현(智賢)스님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서야
청량사가 명산의 명 사찰이 된 이유와 동기 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불교를 보는 시각과 철학, 안팎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 등에서 스님은 다른 이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종래의 ‘받는’불교에서 ‘주는’불교로 탈바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산중(山中)’불교에서 ‘대중(大衆)’불교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주로 ‘법당’에서 해온 법회도 ‘출장’법회로 전환,
스님이 마을로 내려가서 법회를 여는 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불교는 시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다시 말해서 과거와 같이 한번에 수백 명 내지 1000~2000 명씩
모아놓고 법회를 열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는 것이
스님의 분석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춰 방법을 개발,
지역민들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야만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대에 성공적인 포교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장’법회는 지현스님이 처음으로 창안해낸
새로운 법회방식이다.
신도들이 사찰을 왕복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
소모임 활동, 취미 생활, 신행 및 봉사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스님이 마을로 내려가서 법회를 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청량사는 한 달에 하루만은
신도들 모두가 절에 모이도록 제도화, 지원하고 있다.
즉 매달 약사재일(청량사의 주불은 약사여래 부처님)에는
절에 모이도록 하고, 아침 8시 안동과 영주에서
관광버스가 출발하여 절 입구까지 태워다 주도록 배려한 것이다.
청량산 부근에선 전설 같은 얘기 한 토막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선비로서 청량사에 (공부하러) 다녀가지 않으면
선비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다.
요즘엔 “문학인 예술인 지식인 치고
청량사 산사 음악회에 참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시대의 인물이 아니다”는 말로 바뀌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매년 가을에 열리는 청량사 산사음악회가
유명해지는데서 나온 말이 아닐까 짐작된다.
음악회성공 요체 ‘주제’ 먼저 결정하는 것
청량사 산사음악회는 무대가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산전체가 무대이고 객석이다.
봉화에서도 오지인데다 골산(骨山)이어서 암봉(岩峰)들이 많다.
법당, 요사 등도 암벽에 겨우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평지가 거의 없다.
이런 척박한 장소에서 자연을 무대로 한 음악회가 열리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를 무대로, 객석으로 해서 출연자 관객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깊어가는 가을밤을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을 ‘우주의 합창’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청량산 산사 음악회가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이 같이 무대가 특이한 점 외에 무엇보다
‘주제’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른 음악회는 대개 ‘노인잔치’처럼 취급,
법회 후의 뒷 풀이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특징도 없고 돈을 들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그 모양 그 꼴’의 음악회로 전락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청량사는 먼저 주제를 정한 다음
그 주제에 따라 진행순서 출연자(가수 악단)등을 정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엔 이라크 전쟁, 살인사건 등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해였던 만큼
‘평화운동의 필요성’이 대종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비와 사랑으로 평화를’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이를 기초로 해서 준비했다고 한다.
결국 “가수를 초청하는 것보다 ‘종교인들이 모이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 불교, 천주교, 원불교의 성직자들이 모여서
법회를 열고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지현 스님은 술회했다.
그래서 “스님도 신부님도 수녀님도 원불교 종려들도 노래를 했고
신부가 불교노래에 이어 찬송가을 부르고
다 같이 평화를 위한 기도도 했답니다.
또 관객들에겐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자필로 쓰게 한 다음
대형풍선에 매달아 모든 이의 소원이 전달되도록
하늘 높이 날려보내도록 했습니다.”
음악회 끝나고 내려 갈 때 촛불행진 장관
또 하나의 장관은 그날 음악회가 끝난 다음의
촛불행진이었다고 한다.
출연자는 물론 관객들이 한 마음이 되어
수 천 개의 촛불을 들고 질서 정연하게
한 줄로 10킬로가 넘는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천상의 아름다움 그대로였다는 것이
동참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날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참가자는 모두 8000여명이었고,
절 쪽의 예산은 1000만원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올해는 3500만원을 예산으로 책정해 놓고 있다고 한다.
청량사의 유리보전에 이르기 직전
참배객들을 맞이하는 곳이 하나있다. 찻집이다.
분명히 바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비좁은 공간에다 지었다.
무릎 높이의 간판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고 쓰여 있다.
지난 날 어떤 비구니 스님은
“바람은 그릴 수 없어…”라고 말했는데
지현 스님은 ‘바람이 소리를 만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청량사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스님이 내리는 화두 같기도 하다.
스님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제하의 수필집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라고 청량사에서 느낀 상념을 표현하고 있다.
명사들의 옛 시구 탁본 계획
예부터 별들이 노래하는 곳,
바람과 노래와 소리가 합치는 곳,
(응진전처럼)바람소리와 풍경소리 뿐인 곳이어서인지
청량산엔 전설만큼이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관계돼 있다.
공민왕을 비롯 노국공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김홍도 등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스님은 이 역사적 골짜기를 뒤져서
옛날 대 선비들이 써 놓은 시구 등을 탁본하여
조상들의 숭고한 선비정신을 이어받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목표하고 있는 문화의 공간으로
더욱 승화시킬 계획이라고 귀뜸한다.
지난 1984년 스님이 폐사가 된 청량사에 와서
20여 년간 재 창건에 버금가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지현 스님은 포교에 관한 한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스님들 각자가 자기 절 주변만이라도 제대로 관리해 가면
불교포교는 어려운 일아 아니다”는 것이다.
객원논설위원
사진=서현욱 기자/정리=마송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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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