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뜨지 마라, 어주자(魚舟子)알까 하노라
복사꽃 꽃잎이 떠내려 가 여기 무릉도원이 있다는 것을 산 밑에 고기 잡는 어부에게도 숨기고 싶은 퇴계선생의 심정이 잘 나타나있는 시입니다. 청량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또 만년에 내려와 은거하면서 발견한 청량산의 풍취는 선생에게 마치 꼭꼭 숨겨 놓아야 할 보물과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그렇게 청량산을 아끼던 퇴계선생의 청량정사도 세월의 흐름인지 ‘산꾼의 집’이라는 명패를 달고 서 있습니다. 그 삼거리에서 산쪽으로 조금 오르면 금탑봉 아래 고운 최치원선생이 그 물을 마시고 총명이 배가되었다는 총명수가 나타납니다.
고운선생의 유명한 시가 있지요.
道不遠人 人遠道요 山非離俗 俗離山 이란 구절이지요. 퇴계선생이 숨겨놓고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면 고운선생은 그 아무리 아름답고 대단한 산이 있더라도 중생들의 안목으로는 그 산을 볼 줄 모른다는 그런 이야기 같습니다.
총명수를 지나 천길 낭떠러지 금탑봉 허리를 돌아가면 작고도 아름다운 절이 나타납니다. 청량사 응진전, 나한 도량입니다.
불쑥불쑥 솟아오른 잘 생긴 바위가 장관인 그 아래에 양지바른 절집이지요. 거기 응진전 나한님들의 수행처가 있습니다. 나한은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요.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에서 응공이 바로 마땅히 공양 받으실 만한 분 아라한, 즉 나한을 의미합니다. 테라와다불교(상좌부, 남방불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이룬 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아라한님들에게 청량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퇴계선생의 숨겨놓고 싶은 산, 고운선생의 중생들이 알지 못하는 산?
아라한님들의 높고 고매한 뜻은 알기가 어려우나 우리 절집에서는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언듯 들으면 무관심해하는 그런 말 같으나 잘 음미해보면 불교의 묘한 진리가 들어있는 말입니다. 가는사람 잡지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말은 무관심한듯 하면서 가는사람과 오는 사람이라는 가고 오는 것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지 않고 잡지 않는다는 것은 또 그것에 마음을 붙잡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가는 것에 아쉬워하고 오는 것을 반가워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인지상정입니다만은 그것은 가는 것에 걸리고 오는 것에 걸리게 되어 매사가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그 욕심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내 안에 더 가지려하고 좋지 않은 것을 한사코 막으려고합니다. 이런 마음, 바로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중생들의 마음이고 또 이것이 원인이되어 세상사 모든 희노애락, 생노병사의 원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이 고통받고, 아프고, 병들고, 죽어가고 또 그 죽음조차도 제대로 못 죽고 지옥 아귀 축생으로 윤회전생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비밀은 관심에 있습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 대한 관심. 그러면서도 그 오고 가는 것에 욕심을 내어 머무름이 없는 것. 바로 여기에 불교의 道가 있다고 많은 스님들이 말씀 하십니다. 平常心是道입니다.
그 평상심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요? 응진전 나한님들을 참배하고 바위 밑 비밀한 우물에서 물도 한잔 마시고 청량산으로 다시 돌아오시면서 보십시오. 어풍대쯤 이르러 자연히 눈에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금빛 광명으로 빛나는 구름의 바다, 장엄한 부처님의 도량이 거기 있습니다.
청량산을 다녀와서
승가학인 청량사 운문 합장.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