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바람을 품고, 바람은 다향을 머금고
⑧ 봉화 청량사 안심당
신중일 (발행일: 2007/10/15)
갈바람·어린왕자 차 등 독특한 차이름 눈길
수묵화처럼 은은히 퍼지는 차향 ‘청량’ 해라
봉화 청량산은 경상도 산골 오지에 있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이다. 이런 절경 때문에 최근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청량산에는 깎아질 듯한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다. ‘산사음악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청량사는 바람도 쉬어가는 전통다원 ‘안심당(安心堂)’으로도 유명하다. 청량사 전통다원 안심당에서 진한 다향·가을 선율과 별빛에 취해봤다. 〈편집자 주〉
“오시느라 힘들었지에. 퍼뜩 냉수 한 잔 하이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팽주보살이 땀으로 범벅이 된 기자에게 던진 첫 마디다.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실제 봉화 청량산 청량사(주지 지현)로 오르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매표소부터 사찰까지 가는 산길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군대에서의 산악행군을 연상시킨다. 꽤 선선한 날씨였지만, 난데없는 산행을 한 기자는 삼복더위를 맞은 양 비오듯 땀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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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안심당 전경. |
30여 분의 산행으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질 때쯤 깎아질 듯한 기암절벽과 괴석들 위해 자리한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안심당(安心堂)’이라는 현판을 단 전통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청량사의 전통다원인 안심당이다.
숨을 고르며 다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다원 앞에서 눈을 돌리니 앞에는 청량산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진다. 올라오기까지 불편했던 몸과 마음이 한결 누그러든다.
청량산 연화봉 끝자락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고봉스님(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에는 33개의 전각을 갖춘 대찰이었고 인근에는 연대사·망선암 등 크고 작은 암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사찰들은 폐쇄됐고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 건물인 응진전만 남게 됐지만, 근래 들어 지속적인 불사로 어느 정도의 사격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황토로 지어진 안심당으로 들어서려니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고 서각된 작은 현판이 눈에 띈다. 시적인 문구가 적힌 현판 밑을 지나 다원에 들어섰다. 아기자기하게 천장에 걸린 전통등이 정겹다. 풍경·북·목어·학·주마등과 고풍스런 찻집이 매우 잘 어울린다. 대형 투명유리 옆에는 단소·소금·대금이 단아하게 장식돼 있다. 청량사 사중스님이 다루는 악기인데 가끔 내려와 연주한다고 팽주는 전했다.
청량사 전통다원 안심당은 1997년 현 주지 지현스님이 문화포교의 차원에서 개원했다. 다원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사업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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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에 자리한 손님들이 정겹게 차를 마시고 있다. |
이에 대해 팽주 고견화 씨는 “지현스님이 오가는 길손들이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리고 여유를 찾아보라는 취지로 안심당을 개원했다”며 “청량사 안심당은 대중 모두에게 개방된 산사의 포근한 쉼터”라고 자랑했다.
산행으로 지친 길손에게 시원한 차 한잔을 대접하기 위한 스님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땀을 식히며 앉아 있으니 다원의 팽주인 고견화(법명, 47) 씨가 시원한 솔바람차와 냉수를 한 잔 건넸다. 팽주가 내온 솔바람차를 한 모금 마시니 달달한 솔향이 입가에 은은하게 번져왔다.
안심당에서 제공되는 차의 종류는 전부 9가지로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정성스레 손수 만든 차들은 특유의 풍미를 자랑한다. 특히 팽주 고견화 씨가 가장 자랑하는 차는 안심당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바람소리’차이다. 솔잎의 생즙으로 만든 ‘바람소리’는 특유의 향이 매력적이다. 또한 솔잎을 발효한 ‘솔바람’도 은은한 솔향과 청량감이 아픔을 차분하게 해준다.
갈바람·어린왕자 차 등 비범한 이름의 차들도 길손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갈바람’은 국화차를 의미하고 ‘어린왕자’는 장미차를 말한다. 단순한 차 이름에도 문학적 비유가 담겨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이밖에도 오미자·백련차·대추차·유자차 등의 대용차들도 전부 한국산 재료를 써서 손수 제작한다. 일일이 수작업을 한다는 게 귀찮기도 하건만 고견화 씨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즐겁단다. 또한 차를 다룸에 있어서도 몸과 마음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고견화 씨는 전했다.
“차를 다루려면 정신이 맑아야 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차를 다루면 차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말을 많이 해서는 안됩니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없이도 상대방과 소통하고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차의 매력이지요. 저는 차를 통해 손님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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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쉬어가려는 참배객이 다원에 들어가고 있다. |
그래서인지 청량사 안심당의 차 맛은 대부분의 산사 다원에서 느껴지는 구수하고 걸쭉함보다는 미묘하게 옅은 맛이 특징이다. 하지만 옅은 가운데에도 차가 가지고 있는 깊은 풍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곳의 차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청량산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청량사를 닮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여백의 미’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마침 장사익 씨 단독 콘서트 형식의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사를 찾았다. 산행에 지친 길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심당에 들어와서 고된 몸을 선선한 바람과 다향에 맡기고 잠시 쉬어가고 있었다.
분주해진 다원을 뒤로하고 나오니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다.
초의선사는 다시(茶詩) 〈그 달을 떠서 찻잔에 담고〉에서 ‘달을 떠서 찻잔에 담고/ 은하수 국자로 찻물을 떠/ 차 한잔에 명상한다’고 아경에 마시는 차의 풍취를 노래했다. 그믐이라 달은 없지만 밤하늘에는 찻잔에 담을 별과 찻물로 쓸 은하수는 충분했다.
장사익 씨의 걸판진 공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질 듯 흐르고 있다.
봉화 청량산= 신중일 기자
# 찾아가는 길
@버스
동서울 출발= 동서울에서 봉화행 고속버스를 타고 봉화버스터미널에서 북곡행 버스를 타면 청량산입구까지 도착하게 된다.
부산 출발= 부산에서 안동행 고속버스를 타시고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시내버스터미널에서 북곡행버스를 타면 된다.
@기차
청량리 출발= 청량리에서 영주행 기차로 영주역에 도착해 봉화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부산 출발= 부산에서 안동행 기차로 안동역에 도착해 북곡행버스를 타면 된다.
문의 (054)672-1446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