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의미
나는 오늘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글을 읽었다.
나무와 영혼으로 대화를 한다는 인디언, 돈후앙이 “언젠가는 자신의 몸뚱이가 그들의 양식으로 주어질 것임을” 나는 이 대목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이 단순한 진리를 미쳐 알지도,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무에 줄, 나무의 양식이 될 생명의 연결 고리를, 불을 밝혀주어야 비로소 길을 볼 수 있는 나의 우둔함을, 슬픈 눈으로 내면의 나를 보면서, 비에 흠뻑 젖어 벌벌 떠는 가련한 작은 짐승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과 새로운 만남을 한다.
어찌 이리도 우매하게 살았는가, 불쌍한 생각이 한없다.
그는 또 말을 이어 간다, 베어야 할 나무 앞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 ‘나는 당신보다 나를 조금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등하다.’ 식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만심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큰소리로 반복하라, 속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큰소리로 말해야 하고, 남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무엇이건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와 큰소리로 반복해서라도 전달하라는, 절실하게 진실을 표현하라는 말이 가슴과 머리에 동시에 커다란 충격으로 날아와 때려 꽂힌다.
가슴에 묻어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현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흘려버린, 소중한 진실의 의미를 안타깝다 여기게 되었다.
침묵의 의미를, 수양이라 생각하며 표현하지 않은 것들을 기억의 창고, 증발하듯 사라져버리는 혼자만의 기억 창고에 넣어버린 숱한 일들을 버려두고, 현실의 등을 타고 앉아 앞으로 나아감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듯 걸어온 날들, 잃어버린 기억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존재하는 지금만이 진정한 진실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만 무게 중심을 두고, 낱낱의 시간의 토막을 채색하기에 바쁜 생존은 아니었는가, 되돌아본다.
엄숙한 진리 "평등"에 대한 나의 편견은 또 어떻고, 낮은 곳에서 헤아려야 했던 마음의 눈은 이제까지 감겨 있지는 않았는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은 또 얼마나 될까?
마음이 숙연해진다.
글은 또 길을 이어 나를 이끈다.
베트남의 승려, 틱낙산은 “단 한 장의 종이에서도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볼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득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와 사람과 공기와 수풀과 구름을 각각 나뉘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거대한 한 생명체로 보고 있다.”라는 대목에서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살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기회, 다시 숙연한 느낌을 받는다.
의식하지 못했던 인연과 관계를 맺었었거나 맺는, 인식하고 있는 인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한 생명체에서 인식했던 관계들에 대해, 그 대상이 무엇이었든지, 자연이든 사람이든 한계적으로 특별한 애착을 갖게 한다.
어쩌면 다시 나의 한계에 갇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또 말한다.
“만물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나는 손을 놓고 멍하니 깊은 생각에 빠지지만 혼란스럽다.
만물은커녕 인간이 인간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청량한 물소리를 듣고, 번득, 소스라치게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글을 읽게 된 행운으로 이상한 기운이 가슴을 쓸고 지나가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비루한 자신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한다.
몇 날 며칠을 나를 놓아버렸고, 공황에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자벌레처럼 딱 제 몸길이만큼만 기어가듯 의식은 한계에 갇혀 있었다.
목적이라는 의미를 상실한 무의미한 존재, 그렇다, 그냥 존재로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놓아버린 자신이, 놓쳐버린 자신보다 더 오리무중 한 상태에서 머물지도 떠돌지도 못하고 가치를 잃어 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내가 최성현의 "인디언의 가르침"을 읽어나가면서 차츰 씻김을 당하는 것 같았다.
짧은 글이 긴 터널을 뚫어 놓은 것이었다.
종이 한 장이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를 벤 사람, 나무를 키워낸 태양이며 물이며 공기, 더 많은 것이 더불어 종이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심각하게, 정말 맑은 마음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기나 했었던가?
내가 존재하므로 세상, 우주가 존재한다는 말과 우주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말은 다른 자리에서 다른 시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라 이해의 각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며, 물이며 공기, 나무며 돌이, 흙이며 바람이 없는 지구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너른 의미에서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해답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의 평등함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것을 인식하려면 존재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유 앞에 놓여 있어야 한다.
자각하는 존재만이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닌가, 또 생각이 길을 떠난다.
나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생명체이다.
그 유한의 끝자락에서 길을 잃었었기에 삶의 의미를 상실했었는지도 모른다.
애써 흔적을 남기려 했었고, 종교의 교리에 매달리려 버둥거리기도 했었다.
무엇 하나 내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을 자백한다.
언제나 빈 짬에서 솔솔 찬바람이 들어왔었다, 그리고 시간이 바람처럼 마음을 들쑤셔 놓아 버렸었다.
길을 가고 있지만 그 길의 종착지는 언제나 이동을 하는 것과 같아 다다를 방법이 전혀 없는 듯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양식이 될 수 있다는 말 앞에 꼼짝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며, 진리라는, 되돌이표를 발견하고 비로소 안식을 얻은 것이다.
한하운의 시 “봄”이 떠오르는 것은 그 마지막 구절 때문일까?
나를 오늘까지 남겨 놓았기에 글을 읽을 수 있었다는 안도로 가슴을 쓰다듬는 그런 날이 다, 숨을 깊이들이 쉬며 하늘을 본다.
0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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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명체에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이리 편안케 할 줄, 언제 알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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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