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바람이 아우성이다.
뜻을 알아챌 수 없는 고함을 지르다 휘감아 때리기도 하는, 그런 소리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게 하거나, 과녁을 향해 치달리듯 허공을 헤치는 먼데 바람소리가 이마를 서늘하게 한다, 막상 닿으면 휘몰아친 흔적만 남기고 맥없이 사라지는, 그러면서도 연이어 지르는 저 비명소리, 마음조차 기댈 곳 없이 몽땅 쓸어 간다.
더 높고 멀수록 비명은 속이 빈 소리를 질러, 속을 또 뚫어 소름이 돋는다.
마치 세상인심과 똑같다.
상관도 없는 일을 더 들먹이는, 멀지만 가까운 척하는 이웃처럼 참견하려 드는 바람은 속속들이, 미친 바람일수록 구석구석 찾아 파고 들려 한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다가 더 그립다, 바람에 묻히면 비로소 힘을 느끼며, 힘에 밀려 외로워, 더 외로워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곳엔 파도가 있기 때문일 거다.
눈에 보이는 바람.
바다에 바람이 넘치면, 바다를 몰아 때려 덮쳐 육지를 정복하려 든다,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쉼 없이 부딪쳐 깨져도, 끈덕진 몸부림을 하는 바다는, 바람이 불 때가 더욱더 좋다.
바람이 불면, 거칠게 불수록 바다가 생각난다.
땅끝에 서서, 찢기는 바다가 흘리는 흰 피로 몸을 적시면, 매운 겨울, 저며 대는 칼바람에 아픔은 깊을수록 더 좋다.
고통은 희열을 껴안고, 아픈 만큼 외로움에, 고통과 비례하는 평화를 건져 올리는 그물을 파도가 만들어 팽개치듯 던져 준다.
절망의 푸념과 희망의 다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파도는 바람과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하나가 된다.
그 짬을 비집고 서 있는 자포자기 상태인 요즘, 글을 쓰면서 자신을 붙잡아 두려고 안간힘을 쓴다.
만일 내가 인터넷에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올리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오늘을 탈피하려 무진 애를 쓸수록 날카로워진 신경은, 주위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돌출 행동을 한 일이 많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처럼 말이다.
내 절박한 마음은, 내가 지금 바람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바람이 되어 떠돌고 있다.
마음을 찢고 툭툭 튕겨 나오는 광기는 무능한 자신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것도 안다.
반은 미친 사람 같단 생각도 해 본다.
그것은 남모르게, 말하기 싫은, 은밀한 곳에 난 상처에서 튀기는 핏방울이다.
욕심을 버리면 편안해진다고도 하고, 마음을 비우면 더 큰 것을 얻거나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정작 그 말뜻을 소화시키지 못한다.
사람이 쩨쩨해서, 남이 알까 두려워, 은밀한 곳에 상처를 품고 얏 잡히지 않으려 태연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고 있다.
진정한 내 얼굴이 아니다.
미궁으로, 그래서 더 빠져들고 있다.
그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를 핥듯이 가끔 글을 쓴다.
푸념과 다짐을 번갈아 하면서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가장 괴로운 일은, 배움의 모자람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실체가 부끄러울 때다, 그래서 더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글을 써 놓고 소리 내서 읽어 보면 그때 뭔가 나를 향해서 던져지는, 날아오는 육중하고 날카로운 것을, 차갑거나 뜨거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잽싸게 단단히 붙들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인 것을 받아 허겁지겁 가슴에 품을 때,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한 예비 행동은, 기대를 품고 야금야금 다가갈 때, 그때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가는 몰입의 순간, 내 삶에 가장 순수한 시간인 듯하다.
푸념도, 다짐도, 욕망도, 비움도, 솔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옹이 같은 매듭이 만들어질 때, 짐은 하나씩 어깨에 올려지는데 몸에 돋은 비늘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사는 건 더 많은 짐을 지는 것과 같아야 살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무게가 어떤 짐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위안도 고문일 때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대책도 없는 비판이 공허한 위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픈 곳을 뒤척거릴 때 더 아픈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따지지 않는다.
그것은 위안을 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짓밟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현실의 극단, 그 벼랑 끝에 매달려 치열한 몸짓, 마음 짓으로 인연 농사지으려 흙을 일구는 괭이질이 부단해지려면, 그저 말없이 눈감지 말고 지켜봐 주기만 해도 좋다.
그것이 더 큰 위안인 것을, 기억 당하는 것을 원한다.
내가 바람 부는 날, 바다를 한없이 그리워하듯이.
침몰을 꿈꾸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함정에 빠진 느낌이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람은 비명만 지르는가?
몸을 맡기고, 귀를 기우려 본다.
해독할 수 없는 소리, 분명 무어라 말을 전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알아듣지를 못해 더욱 답답하다.
그냥 내맡겨버리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묻혀 있고 싶다, 한없이.
나 아닌 나도 나와 같이 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해서 애달프다.
바람이 불면 비극을 떠나보내는 상엿소리처럼, 혹은 생전 처음 살아나고 있는 태동의 힘을, 양면의 서로 다른 강렬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한없이 따라가고 싶은 까닭이 그것일까?
바람소리.
바람소리.
0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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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