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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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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여러 유명 사학자(史學者)들은 한반도를 일컬어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이 비극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세의 침략과 강점,
그리고 나라의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나는 분단 등을 두고
그들은 이렇게 얘기했으리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철조망을 쳐놓고
총칼을 겨누고 있는 나라,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어찌 그러하지 아니하랴.
눈물 겹지만 아름다운 한민족
이 나라는 그처럼 비극적인 나라인가?
누구는 이 한반도를 가리켜 지형적으로 토끼 같다고 했고
누구는 또 대륙을 물어뜯고 있는 호랑이의 형상이라고 했다.
토끼의 모습이면 어떻고 호랑이의 형상이면 어떤가.
소중한 것은, 한민족은 오천여년의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한 번도 말과 글의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한민족은 심성이 맑고 곱고 정겹다.
이웃의 아픔이 있으면 같이 아파하고,
이웃의 배고픔이 있으면 같이 배고파했다.
동고동락의 참다운 정을 나누며
모진 외세의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아 견뎌온 정신이
바로 그러한 이웃 간의 남김 없는 보살핌이었다.
심성이 곱고 선하다 보니 좋아하는 색깔도 번쩍거리고
화려하고 찬란한 것보다 그저 소박하고
담백하고 조용한 흰 색을 선호했다.
백의민족이라 하여 늘 흰 옷을 즐겨 입고
서로간의 예의를 지키며 아끼며 살아온 게 한민족의 역사다.
누가 뭐라고 하든, 결코 슬프지만 그 슬픔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끝까지 굴하지 않는 꿋꿋함으로
살아온 것이 한민족의 눈물겹지만 아름다운 역사다.
이제 찬 서리 내리고 가을바람 분다.
가을바람 소슬히 불어 나뭇잎 떨어진다.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 사이로 우리네의 정겨운 가을 익어간다.
그리하여 아주 탐스럽고 고요하고 소담스런
우리네 한국의 정서는 깊어간다.
북소리 장구소리 거문고 가야금의 소리에 어울려,
곳곳에서 축제도 많이 열리고, 그 장단의 깊숙한 어울림에 맞게
빨갛게 감들이 익어간다.
돌담 저 너머 초가집 곁에서 예쁘게 익어가는
탐스런 감들은 우리네의 누이요
그 누이들의 두 뺨에 솜털처럼 어리는 정겨움이다.
앞집에 갑순이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갑돌이는 목메러 간다….
휘영청 떠있는 보름달 아래서,
손수 담근 동동주 한 사발 나눠 마시며
부르는 이런 노래는 한스럽다.
구성지고 한스럽지만 또한 익살스럽고 정겹지 아니한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
웃음을 잃지 않는 민족은
결코 절대로 스러지지 않고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못난 사람을 자꾸 못 났다고 비웃지 말고,
잘난 사람을 자꾸 잘 났다고 너무 추켜세우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가을,
축제의 마당에서 다 함께 웃을 수 있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슬프고
비극적인 나라의 백성들이 아니라,
아주 진취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엿한 독립적인 존재임을 다시 되뇌이면서
이 가을을 소중하게 맞이하고 있다.
이제 보릿고개란 말도 옛 말이 된지 오래다.
그 말뜻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마당에서
흥겹게 노는 남녀노소들, 보기 좋다.
[불교신문 2179호/ 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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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 날짜 | 2005-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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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