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담긴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평소 잊고 살았던 지인(知人)들로부터 반가운 연하카드가 오고,
스승이나 멀리 떨어진 친지나 벗에게 연하카드를 보내는 일은
감사하고 그리운 마음, 소망을 이루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보내는 것이기에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쁜 일이다.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도 인터넷카드로 보내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종이인쇄카드로 받는 연하카드보다 인터넷 편지함에 쌓이는 인터넷카드로
주고받는 일이 일상화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게으름을 탓이라도 하듯이 종이인쇄카드와 인터넷카드가 하루에 두세 통씩
도착하고 있다. 나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 연하카드를 보내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플래시 카드에 감사하는 마음,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보낸다면 받는 사람도 반가워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카드를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글씨에서 잉크냄새 풍기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열어보는 것이 더 정겹고, 기쁨이 크다.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고, 공유하기 위해 몇몇 지인에게는
직접 써서 보내고 있다. 그리고 도움을 주신 어른들께는 카드 대신에
문안편지를 드리기도 한다. 비록 문안 편지는 글씨 쓰기가 힘들어
컴퓨터로 정서를 한 후 서명을 하여 보내지만 봉투에 우표를 부치고
간 우체통에 넣는 순간까지 감사한 마음 담는 것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떠올리게 되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책상 앞에 앉아 볼펜을 들고 카드를 펼치니
카드에 얽힌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우리 옆집에는 남수라고 하는 고등학생 1학년 오빠가 있었다.
남수오빠는 늘 비척거리며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내 가방을 들어주기도 하고,
바보라고 나를 놀리는 지궃은 아이들을 혼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집에 놀러와 산수나 국어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어머니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던 모습이
언뜻 기억이 나기도 한다.
큰아버지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남수오빠는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나는 남수 오빠의 집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오빠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요.
1년 동안 국어공부랑 산수공부랑 가르쳐준 오빠의 은혜에 감사 드려요.
항상 건강하세요. 4학년이 되어서도 열심히 공부할게요..
오빠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 오빠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 드릴께요."
라고 뜻도 잘 모르는 "명복"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한껏 문장에 멋을 부려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다.
나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남수오빠는,
"웃는 모습이 이뿐 명숙아, 방학은 잘 지내고 있니?
보내준 크리스마스 카드는 잘 받았단다
네가 이 오빠가 호호백발이 되어 죽은 후까지 걱정을 해주는
카드를 받아서 더욱 기뻤단다. 그리고 많이 웃었단다.
그 보답으로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집 '꽃길'을 보내니 읽어보렴."
하며 답장을 보내주었다. 오빠가 많이 웃은 이유를
어머니에게 듣고 나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부끄럽고 창피해서
며칠동안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 겨울 방학동안 남수 오빠에게 서너 번 편지를 보냈고,
편지를 받은 오빠의 답장에는 편지 쓰는 법, 동시 읽고 쓰는 법 같은
글 쓰기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거나 오빠의 동생이 읽던 동화책과
동시집이 동봉되어 왔다.
지금도 연말이 되면 철없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카드 사건이
생각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죽은 사람에게 쓰는 말인 "명복을 빈다"고
쓴 나의 크리스마스카드를 받고 남수오빠가 얼마나 황당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린다.
재치 있게 나의 실수를 덮어주고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네게 동화책과 동시집을 보내준 남수오빠의 깊은 마음은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이제 3학년 짜리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눈가에도
세월의 풍화작용 같은 주름이 늘어간다.
아마 남수오빠도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중년의
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선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에 얽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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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