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 량 사 ▒▒

청량사의 밤 뜬 마음 걷히게하고

이 름	: 정연숙 (불혜광)	조회수	: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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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의 밤, 뜬 마음을 걷히게 하고
언젠가 본 듯한 얼굴이다. 어느 적 살았던 적이 있던 마을이다.
마당쓸다 환한 미소지의며 마중나올 것 같은 우리 엄니같은 절,
이것이 내가 인터넷 청량사에서 품어온 느낌이다. 이 ‘느낌’이
내빼다시피 서울서 달려온 이유이다.
가로줄 세로줄 인연에 묶여 삶의 1순위를 잊어버린
헛걸음 빈발걸음의 세월을 속으로 탓하며, 얼마나 청량도량 찾기를
고대했는가.
산사의 선지식(善知識)과 부처님의 원력(願力), 나약한 이 몸이
의지할 곳 없이 헤매다가 기어이 12월 31일 그 뜻을 이루었다.
맘먹고 길을 나섰다. 잘 뚫인 고속도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영주 봉화로 이어지는 태백의 준령, 낙동강 상류의 그 청정의 경치
바깥풍경 뒤로하고 청량사 입구에 다다른다.
처음 오는 길이라고 절에 전화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우리 입장을
미리 살피시고 허이 허이 '날아서' 절 입구까지 오라신다.
꼬불꼬불 험한 산길, 길이 험해 다른 풍경 볼 수 없다.

드디어 가파른 절 입구에 도착, 차에서 내려 80도 각도로
절을 올려다 본다.
절은 기암괴석 사이 위태한 듯 자리하고 있다. 가만이 보니
절제된 규모, 청량사의 특징이다. 건물은 산과 바위와 조화되어
있어야할 곳에 유(有)가 있고 없어야 할 곳에 무(無)가 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고, 청량사는 청량사다.
산사의 하루밤이 설레고 설렌다. 가슴이 차오른다.
내 고향 내 집 내 이웃같은 절.
오래간만의 일탈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안심당(安心堂)을 지나 철도 침목이 깔린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오른다.
높다랗게 범종각이 있고 그 밑에 이르니 두 갈래 길이 나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 잠시 망설인다.
장작 자르는 소음, 그 인적을 따라 오른 쪽으로 올랐다.

아!
인터넷 홈에서 뵙던 주지스님이 올라오고 계신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래쪽에 공양간이 있었다.
아마도 저녁공양 들고 오시는 길이 아니 신지...
한손에는 이번에 내셨다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책자를 들고 계신듯 하셨다.
합장하고 반배(半拜)드리니유리보전(琉璃寶殿) 가리켜 주시며
참배하고 저녁공양하라 일러 주신다.
짐보따리 뜨락에 내려놓고 참배하고 돌아오니 또 묵을 방을 일러 주신다.

미리 온 어느 보살님 가방이 방안에 놓여있다.
보따리 풀어 놓고 공양간으로 향한다.
찾아간 공양간은 뜻밖에도 아주 옛날 그 고향집 할머니께서
함박웃음 지으시며 맞아 주신다.
공양간에는 할머니 공양주 보살님의 정성이 가득 차 있다.
김치, 도라지 무침, 김, 미역국, 보리밥 이것이 저녁공양 식단이다.
밥맛에다 할머니 공양주님의 따스함이 반찬되어 성찬중의 성찬이다.

저녁 예불 시간 가까웠다. 얼른 보따리 넣어 둔 방으로 돌아 왔다.
묶을 방은 어릴 적 가족들과 살을 부비던 고향집처럼 작고 따스하고 아늑하다.
법고 소리에 얼른 법복으로 갈아입고 유리보전 으로 내달린다.

스님 한분은 법고 운판 목어 종을 치시고 또 한 스님은
법당에서 목탁을 서로 장단 맞추듯 올리신다.
다 외우지 못하는 천수경 입속으로 웅얼이며 나의 도반과
또 다른 보살님과 처사님과 함께 정성스레 예불을 드렸다.

찬바람이 법당안을 돌고 점점 몸이 추워진다.
그러나 맑은곳 밝은곳 산사에서 약간 들뜬 마음
또 다른 마음이 지켜본다.

예불 뒤 얼마동안의 참선, 법당을 나온다. 어둑해 진 경내,
천천히 가슴 가득 맑은 바람 들이쉬며
도반과 함께 산책하며 돌아본다.

그 발걸음 따라 고양이 한마리 동무하자 따라오네.
내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내 발등에 몸을 부비고
걸음 떼놓으면 같이 또 따라 온다.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 사랑을 알아버린 고양이다.

범종각 앞에 있는 약수터엔 밤새 물소리가 졸졸 넘친다.
바가지로 한입 크게 마셔본다. 어찌 그리도 시원 한지
천상 우리내 고향 물맛이다.

별 보고파 눈을 드니 달빛에 가려 보이지 않고
어둠에 쌓인 산봉우리들만 빙 둘러 서있다.
절의 일상, 해우소에 들러고 세면장으로 간다.
고급 아파트 욕실 같은 세면장. 작지만 아담하고 깨끗하다.
물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운지 이 물먹고 여기 오래 살면
이쁘지고 몸도 맑아질 것 같다. 물이 좋아 청량사엔 옛부터 원효정(元曉井)
이란 샘이 있었다든가?
그 물로 도반과 함께 세수하니 개운하기 짝이 없다.
새벽예불 약속하며 도반과 헤어지다.

같은 방 동병상련(同病相憐) 보살님과 도란도란 얘기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새벽예불 예약한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세수하고 법당가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 그곳에 별은 있었다.

달이 지고 나니 별이 나타나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는 별무리던가
가슴가득 별을 담아 법당으로 향한다. 스님은 벌써 새벽 예불 올리신다.
저녁예불처럼 자리잡고 처음해보는 새벽예불 정성스레 드려본다.

산사의 아침은 이르게 찾아온다.
도반과 산책에 나선다. 같이 길을 나서 준 도반이 의젓하고 고맙다.
별이 진다. 아침 안개가 꼬불꼬불 계곡을 따라 올라온다.
아침의 청량사는 밤의 그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방의 봉우리들이 내 곁으로 성큼
병풍처럼 다가온다.
그림에서나 보아오던 절벽과 봉우리들, 신기하고 경이롭다.
뽀얀 안개속 저쪽, 해우소엔 스님 한분이 그 내다 버린 우리들의 업(業)을
청소를 하고 계신다. 송구하고 감사하다.

어젯밤 그 할머니 공양주 보살님이 아침 공양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 78세 할머니 공양주께 진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다음에 또 뵐께요. 빈말이 아니다.

주지스님을 찾았다.
온데 간데 없다.
바쁘신가 보다.
하직인사도 못 드리고 절을 나선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상(日常)’ 그 일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루 밤의 기운으로 무엇을 도모할까마는, 몸의 때 벗기듯 업의 실타래를 한줄 한줄 털어낸다면 이 하루가 내 인생 전체 살림살이에 밑반찬이 되지 않을까.

다른 내일 또다시 이 절을 찾으리라.
그리고 못다 푼 이 인연의 뒤엉킴을 벗어 ‘가위눌림’의 세월을 청산하리라.

| 글쓴 날짜 | 2004-01-05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나그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