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위한 반대는 ‘NO’…대안까지 ‘제시’
기획2; 환경보전 실천 현장 -청량산문화연구회
‘지역발전’을 빌미로 지자체 주도의 난개발이 횡행하고 있는 요즘, 당장의 이익으로 지역마다의 특성이 무시된 채 벌어지고 있는 개발 광풍을 온몸으로 막는 단체가 있다. 지역 환경과 문화 지킴이 ‘청량산문화연구회’ 회원들을 지난해 12월23일 봉화 청량산 입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사진> 지난 10월 열린 ‘청량산 달맞이 기행’에서 아이들이 떡메치기를 체험하고 있다. 청문연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회당 50명 정원에 100여명 씩 찾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반대 위한 반대는 ‘NO’…대안까지 ‘제시’
봉화 안동지역 스님과 문화예술인 등 ‘주축’
‘우리고장 살리기’ ‘난개발 문제’ 해결 앞장
봉화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청정지역이다. 특히 청량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해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렸으며, 원효스님 또는 의상스님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을 비롯한 20여 개의 절터가 남아있어 신라불교의 요람으로 일컬어졌다. 이런 천혜의 자연, 역사, 문화환경은 문화재청이 지난 2007년 청량산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도록 만들었다.
청정한 고장에도 개발의 역풍이 불어 닥쳤다. 지난 2004년 봉화군이 청량산에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역주민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였다. 이때 나선 것이 청량산을 중심으로 한 의식 있는 주민들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청량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들은 똘똘 뭉쳐 청량산 골프장 건립을 막아냈다.
반대운동은 성공적으로 회향됐지만 걱정거리는 여전했다. 환경은 지켜냈지만 지역민의 살림살이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청사모는 고민에 빠졌다. “모두가 잘 사는 내 고장으로 만들 수 없을까?” ‘청량사문화연구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2005년 창립된 연구회는 청량산을 중심으로 봉화와 안동지역의 종교인과 젊은 귀농인, 문화예술인, 지역주민 등 20여 명으로 꾸려졌다. 공동대표로는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과 안동 농암종택 대표인 이성원 박사를 세웠다.
연구회의 주요 사업은 ‘우리고장 살리기’다. 난개발이 횡행하는 속에서 청정한 고향을 지키고 고향 떠난 젊은 인재들이 돌아오는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문화’를 지역 살리기 방안으로 선정했다.
연구회가 다른 환경단체 또는 문화단체와 분명한 차별성이 바로 이점이다. 환경단체는 환경 파괴와 훼손문제만을, 문화단체가 전통문화 지키기에 주력하지만, 연구회는 환경을 지키면서 문화를 선양하며 소득창출, 지역발전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공동대표 지현스님은 “난개발은 분명히 반대한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령이 분명하니, 사업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문화를 살려 마을 공동체를 형성해 단합을 꾀하고 외지인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목표다. 회원들은 산골미술관, 도서실, 정보화마을, 체험마을 등 지역문화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맞춤형 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이성원 공동대표는 “개발로 먹고 사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몇 년 가지 못한다”며 “산골을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지역주민들은 개발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2차선 도로보다 넓직한 4차선 도로가 뚫리는 것을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대표의 답변은 확고부동했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다. 난개발보다 자연환경을 지키면 더 큰 이익이 있다. 청정자연에서 나오는 잠재적 이익은 당장 개발로 얻는 소득보다 훨씬 크다.”
 연구회는 창립 후 다양한 지역살리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해 공민왕문화제를 주관하고, 청량산 달맞이 기행은 가족단위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섬진강 강변길과 경춘가도와 함께 청량산 강변길을 ‘우리나라 3대 강변길’로 자체 명명하면서, 지자체도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연구회 활동은 지자체의 인식 전환에 기여한 바가 크다.
<사진> ‘청문연’의 주역들. 좌로부터 정도윤 사무국장,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 이성원 박사.
지역의 대표적인 인사들이 포진한 연구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오히려 자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옛길’ 복원 사업. 낙동강 발원지에서 도산서원에 이르는 옛길을 복원하는 데 참여하는 전문위원 17명 중 3명이 연구회 회원일 정도다.
이날 취재차 모인 연구회 회원들은 어느새 현안 문제 토론에 푹 빠져버렸다. 주제는 청량산에 최근 설치된 하늘다리. 봉화군이 하늘다리 인근에 편의점과 화장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견이 분분했다. 회원들은 하늘다리가 지금은 관광객을 끌겠지만 2년 후에는 매력 없는 구경거리가 될 것으로 단언했다. 지현스님은 “화장실과 편의점이 들어서면 쓰레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차라리 지역 농산품 판매점을 세우면 주민들에게 이익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도 이에 동조했다. 이렇듯 연구회는 지역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물론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실패로 돌아간 사업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감자 작목반’이다. 자주감자로 통칭되는 우리감자를 재배해 지역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진행했지만 가격문제로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구회는 실패에 주눅 들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더 나은 실익을 줄 수 있는 사업 구상에 매진하는 디딤돌로 삼을 뿐이다.
이성원 대표는 “땅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보기 좋은, 놀만한, 살만한 땅이 그것이다. 청량산 일대는 이제 볼만한 땅에서 머물지 않고 정을 나누고 자연과 문화를 지키는 살만한 땅이 돼야 한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지현스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한 평생만 살면 가지만 청량산은 천 년 만 년을 이어져가는 유산입니다. 개발이 되면 당장은 편리하고 새로워 보이겠지만 관광객들은 두 번은 찾지 않을 것입니다. 청정한 자연을 지키면서 이를 통해 우리 문화를 배우고 느끼는 공간으로서 계속 찾고 싶은 매력을 갖춘 곳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주민에게 이득을 주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안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고 이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도모하는 연구회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청량산문화연구회가 하고 있는 일들
 # 청량산강변길 달맞이기행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모두 10회가 열리며 청량산을 전국에 알린 대표적인 행사다. 가족들이 청량산 주변에 분포한 갖가지 환경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달맞이꽃이 피는 소리 듣기, 장승이나 천연염색 등 자연미술체험, 강변길 문학기행, 전통등 만들기 등 차별화된 일정이 특징이다.
 # 공민왕문화제
지난 2006년부터 진행된 지역주민축제로, 청량산에 공민왕당이 있고 예부터 당제를 지낸 전통을 복원한 사업이다. 4일간 열리는 문화제는 음악회와 학술세미나, 공민왕 설화 미술체험, 공민왕 행차 재현, 당제 등으로 진행된다. 연구회는 잊혀져가는 마을 전통풍속을 복원해 지역공동체를 되살리겠다는 목적으로 문화제를 열고 있다.
 # ‘청량’지 발간
지난 2005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청량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책’ <청량>은 지역사회에서 인기가 높다. 매년 1호씩 발행하는 비정기 잡지인 <청량>은 동네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귀농인 인터뷰, 청량산 명소와 전설 등은 고장뿐 아니라 외지인들에게도 중요한 정보로 삼을 수 있을 정도다. 청량산 주변의 역사와 문화,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풀뿌리 언론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소화하고 있다.
 # 비나리미술관 운영
연구회 회원이 운영하는 산골 미술관으로,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밀착형 프로그램 시행으로 호응이 높다. 미술학원에 다니기 어려운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3년간 주말미술교실을 열고, 연말에는 아이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주민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낡은 버스정류장에 그린 벽화는 타 지자체가 탐낼 정도로 봉화지역의 특별한 문화 콘텐츠가 됐다.
봉화=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불교신문 2490호/ 1월1일자]
2008-12-30 오전 11:48:28 / 송고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