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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불교건축-부도와 석등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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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불교에서는 세 가지 성스러운 보배인 불.법.승의 삼보를 숭배하고 있다.
즉 불보는 탑과 불상을 조성하여 공경하고,
법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많은 경전으로 엮여서 귀하게 보급하고,
승보인 스님은 불법을 전하고 민생을 교화하는
전도잦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승보로 공경받던 많은 고승들은 백성의 스승인 국사의 칭호와
국왕의 스승인 왕상의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교화는 물론 불법의 탐구에도 정진하여
외국에까지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덕망 높은 스님이 일생을 마치게 되면
평소에 스님을 받들던 제자와 신도들이
스승의 묘탑인 승탑(부도)과 탑비를 세우게 되었다.
또한 승탑과 탑비는 왕명으로 탑호가 붙여지며,
탑비의 비문은 당대 제일의 문자가가 글을 짓고
명필가가 글씨를 써서 비석에 행적을 새겼다.
이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세워진 승탑과 탑비는
특히 신라 하대부터 장엄한 조형으로 완성되어
우리나라 석조미술의 진면목을 이루게 되었다.

승탑의 건립은 탑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사리불, 목건련 등 제자들의 묘탑으로
처음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부도’라는 명칭으로 널리알려져 있다.
부노는 ‘붓다(Buddha)'의 음역이며
원래는 부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고승을 부처님처럼 존경하여 부도라 일컫게 되었으며
나아가 고승의 묘탑이 곧 불탑과 대등한 부도로 굳어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절의 외곽에 따로 탑원을 마련하여
승탑과 탑비를 안치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부도의 모양은 조선시대 이전까지
대부분 불탑과는 별개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극히 일부의 부모만이 석탑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후기 이후로는
석당형 부도, 석탑형 부도, 석종형 부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는 간단한 석종형 부도가 크게 유행하였다.

부도와 불탑을 비교해 보면
양자가 사리를 봉안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그 형태에 있어 불탑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불탑이 절의 중심지역인 법당 앞에 세워지는 데 반해
부도는 사찰 경내의 변두리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지며 이를 부도전이라 일컫는다.

부도의 형태를 양식적으로 분류해보면 팔각원단형.복발형.방형 부도 등이 있다.
팔각원당형은 단층으로 기단.탑신.옥개가 모두 팔각형이다.
옥개는 목조건축의 양식을 모방하여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에 사자.신장.비천 등을 새긴 것이다.
이 팔각원당형 부도는 우리나라 부도의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신라시대 말기와 고려시대 초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고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는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이 있다.
또 이 밖에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산사탑,
여주고달사 부도 등이 팔각원당형의 형태를 취한 것들이다.

복발형 부도의 가장 오랜 예로는 경남 울산 태화사 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인도의 둥급탑 양식을 따른 유일한 부도이다.

부도는 승려의 묘탑을 석재로 만든 것으로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착한해낸 것인데,
그 전형양식의 정립은 신라 하대에 선종이 들어옴에 따라
조사숭배사상이 짙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시원 양식으로는 진전사지 도의선자 부도를,
전형양식으로는 염거화상탑을 들어 팔각원당형임을 알 수 있다.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각 부의 구성과 표면장식이 가장 아름다운 대표작은
쌍봉사 철감선사탑이며, 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다소 간략화된 경향을 봉림사 진경대사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초기에는 전대의 전형양식인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는 부도가 건조되었다.
그러나 11-12세기에는 전형양식에서 벗어나
평면이 사각형으로 변하고 탑신석 등
부분적으로는 원구형으로 변하는 특수양식의 발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후기에는 전형양식과 특이형이 혼용된 부도도 건조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각 부의 구성이나 표면 조각에서 간략화와 둔중함을 느끼게 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배불숭유라는 상황 속에서도
전대의 여세로 몇 기의 볼만한 팔각원당형의 석조부도가 건조되었으며
임진 왜란 뒤에도 몇 기의 볼만한 유품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전대의 모방에서 그쳤고
창의적인 점은 보이지 않으며 간략화와 둔중함이 눈에 띈다.

한편 팔각원당형의 전형양식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조된 석종형 부도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그 양식이 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선대에 비하여 훨씬 많은 수효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석종형 부도의 건립이 팔각원당형의 부도의 건조보다
손쉽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등

석등은 원래 집안의 정원을 밝히는 등화구였는데
중국 한나라 때부터는 능묘에도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불교가 도입된 이후로는 진리를 밝히는 상징물로 받아들여
다양한 형태의 석등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사찰의 석등은 탑 앞에 배치되는 것을 비롯하여
고승의 묘탑 앞에도 세웠졌고
고려시대부터는 임금과 정승의 능묘 앞에도
장명등이란 이름으로 세워졌다.

석등의 일반적인 구조는 기둥의 밑에 댓돌을 놓고
중간부는 기둥을 세우며 상단에는 연꽃 받침대를 장식하고
그 위로는 불발기집을 얹게 되어 있다.
기본적인 평면형태는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기둥은 팔각기둥, 사자모양, 장구모양 등으로 표현되고
고려시대부터는 사각형, 육각형, 석등도 등장하고 있다.
불발기집은 양면, 사면 혹은 팔면으로 불빛창을 내고
그 테두리에는 비비람을 막기 위하여
종이나 베를 씌운 창틀을 고정하도록 못구멍을 내었으며
창 주위에는 사천왕이나 보살상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배제의 석등편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찰 석등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일러주고 있다.
그러나 형태가 완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는
영주 부석사 석등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석등들이 남아 있다.

석등의 종류는 크게 주형 석등, 쌍사자 석등, 사각형 석등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형석등은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팔각기둥형 석등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부석사 석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석등은 댓돌 각 면에 두 개씩의 안상을 배치하고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베풀었으며 그 위로 팔각기둥을 세우고
석등받침돌에는 연꽃장식을 하였다.
불발기집에는 삭면에 보살상이 새겨지고 상륜부에 보주를 얹어
전체적으로 매우 단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쌍사자 석등은 일반적인 팔각 석등과 구조가 비슷하나
기둥을 쌍사자형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쌍사자 석등으로는 법주사 쌍사자 석등,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등을 들 수 있다.
이 석등들은 한결같이 기둥부분에 마주선 쌍사자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불법을 호위하는 동물 중에 으뜸 가는 사자를 쌍으로 배치하여
진리의 등불을 받들게 함으로써 사자를 배치하는 석탑이나
승탑의 조형을 석등에서도 응용한 듯하다.

사각형 석등은 대체로 기둥을 제외한 다른 부재,
즉 불발기집과 댓돌 등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석등은 고려시대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관촉사 석등, 현화사 석등 등이 이와 같은 예에 속하며
조선시대의 석등으로는 청룡사 석등, 화암사지 석등이 포함된다.
논사 관촉사 석등, 개성 현화사 석등 등은
둥근 기둥에 장식을 베풀고 불발기집을 개방형으로 나타내었으며
석등의 꼭대기 장식부분인 상륜부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 글쓴 날짜 | 2008-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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