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을 지키는 참뜻은 무엇인가?
근래에 와서 불교 신도들이 재일에 사찰을 많이 찾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듯이
불자들이 특정 재일에 사찰에 가는 풍습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 재일을 지키는 풍습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에 의해 불교가 권장되면서
재를 닦는 풍습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육재일(六齋日) 혹은 십재일(十齋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달에 여섯 번 혹은 열 번의 재일을 지키며 불교신행을 닦았던 것입니다.
재일뿐만 아니라 재월이란 말도 쓰였습니다.
삼장재월(三長齋月)이라 하여 정월과 5월, 9월에
특별히 부처님의 계율을 지녀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닦으면서
신심을 청정하고 경계하는 법을 닦아왔습니다.
또 팔왕일(八王日)이라는 날도 있습니다.
이는 팔절일(八節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년의 24절기 가운데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춘분, 입동, 동지에 해당하는
8일간 재계를 지키며 선업을 닦는 날로 삼았습니다.
이렇듯 재일 혹은 재월은 재계하여 몸을 살펴 근신하면서
악업을 짓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여 수행 자세를 가다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재일을 지키는 의미 - 윤리의식의 고취
《지장보살본원경》<여래찬탄품>에는 재일을 지키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십재일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습니다.
보광보살이며, 미래세의 중생들은
매달 1일, 8일, 14일, 15일, 18일, 23일, 24일, 28일, 29일, 30일의 십재일에
모든 죄의 가볍고 무거움이 결정되느리라.
염부제 중생들의 행동과 생각 하나 하나가 업 아님이 업고 죄 아닌 것이 없거늘,
하물며 방자한 마음으로 살생.도둑질.사음.거짓말 등
백천 가지의 죄를 일부러 지어서야 되겠느냐?
만약 십재일에 부처님과 보살님과 모든 성현의 존상 앞에서
이 경을 한 번 읽으면 동.서.남.북 백 유순(由旬)내에서
모든 재난과 고난이 없어지며, 그가 사는 집안의 어른이나 아이가
현재 또는 미래의 백천세에 악도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또한 매달 십재일에 이 경을 한 편씩 읽으면
집안의 모든 횡액과 질병이 사라지고 먹는 것과 입는 것이 풍족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십재일에 중생의 업이 결정되므로 악업을 삼가고
《지장경》읽기를 관장해 놓았습니다.
이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재일은 악업을 범하지 않도록 한다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동시에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계의 계목이
‘첫째, 죽이지 말라. 둘째, 도적질하지 말라. 셋째, 사음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라‘인데
이는 대표적 악업을 하나하나 들어 말해 놓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중생의 생활 속에는 열 가지 악업을 범하기가 쉽습니다.
몸과 말과 뜻이 세 가지 업으로 죽이고, 훔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말을 꾸며서 남을 속이고, 욕설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성을 내며, 어리석은 짓을 예사로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이 재의 참뜻입니다.
흔히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윤리적 행위를 중요시합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계율은 불살생(不殺生)으로 일체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짐승은 물론 벌레들에 이르기까지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뭇 생명의 존엄성을 윤리의 최고 지표로 삼아
여기에 선(善)의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속적 윤리 차원을 훨씬 더 뛰어넘은
고차원의 윤리의식을 가르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재를 닦는 것도 바로 이러한 윤리정신의 고취입니다.
재란 원래 산스크리트 우포사다가 어원입니다.
본뜻은 앞서 말한 대로 신.구.의 삼업을 깨끗이 하여 악업을 짓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뜻이 후대에 와서 다르게 쓰여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이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
불공을 드리는 것도 재를 지낸다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죽은 망인을 천도하는 것도 재가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재라는 것은 불교의 윤리적 실천을 말하며,
자리이타의 공덕을 회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일은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의 부정을 없애는 날
고려시대에는 팔관재(八關齋)를 행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궁중에서 실시한 팔관회라는 행사도 역대 왕들이 널리 실시했다고 합니다.
팔관재는 재가에 있는 일반인들에게 출가자들이 지키는 계를
하루 동안 지키도록 하는 것으로, 오계를 포함한 팔계를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관(關)은 닫아 막는다는 뜻으로 금지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을 정하여 하루 밤낮 동안 살생을 금하고,
훔치지 않으며, 음행을 금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며, 향을 바르거나 노래하고 풍류를 즐기지도 않으며,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도 않으며, 식사기시간이 아닌 때에는 먹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을 절제하는 하나의 극기 훈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팔재계에 대한 계율적 근거는 《구사론》에 설해져 있는
팔지근주재계(八支近住齋戒)와 《약사본원경염송의궤》,
그리고 《잡아함경》,《중아함경》 등에 설해져 있습니다.
또한 《팔관재경》에는 육재일에 팔관재계를 닦는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재일을 절에 가서 기도하는 날로 이해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의 부정을 없애는 날입니다.
특히 육재일이나 십재일을 불보살과 관련지어
십재일불(十齋日不)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보통 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초하루를 정광여래(定光如來) 재일,
8일은 약사재일, 14일은 보현보살 재일, 15일은 아미타불 재일,
18일은 지장보살 재일, 23일은 대세지보살 재일, 24일은 관음보살 제일,
28일은 비로자나불 재일, 29일은 약왕보살 재일, 30일은 석가여래 재일이라 합니다.
이 재일에는 마혜수라천왕 등 천왕이나 천왕태자 또는 천왕이 보내는
사자들이 내려와 각 불보살의 명호를 생각한다 합니다.
육재일은 10재일 중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의 여섯 날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일을 지장재일이라 하고 24일을 관음재일이라 하는데,
과거 중국의 일부지방에서는 18일을 관음재일, 24일을 지장재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재일을 지키는 것은 불교신행의 생활화를 의미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부처님의 법이 우리 생활 속에 실천 될 때 유용한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불자들이 불교를 올바로 신행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지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병술년 새해를 맞이하여 보다 독실한 신행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원력, 즉 자기가 지향하는 어떤 목표를 세워서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특히 불교가 대사회적인 종교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불자들의 신행 활동이 왕성해야 하며 불교적 신념에 의한 자기 지표가 있어야 합니다.
불교를 자기화. 생활화. 지성화 하자
일반적으로 불교발전을 위해서 제시할 수 있는
불자들의 지표를 말해본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교의 자기화입니다.
불교를 자기 것, 곧 내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선심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교를 구경하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불교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 가지고 있습니다.
강둑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듯 부처님의 법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불교 주변에 많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강물이라고 한다면 물로 세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사람이 참된 불자가 할 수 있습니다.
구경만 하는 방관자는 불자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용수(龍樹)보살은 《대지도론》에서
“불법의 대해(大海)는 믿음으로 들어와 지혜로 건너간다”고 하였습니다.
바다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산중의 사찰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경우를 봅니다.
관광객들 가운데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법당에 들어와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불자들은 법당에 들어와 절을 하지요.
똑같이 절에 왔으나 법당에 들어와 참배하는 사람과
들어오지 않고 절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식적으로 절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는다고 하여도
아직 부처님의 법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과
들어온 사람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심이 깊은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신심이 깊어야 불교가 자기화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이것은 내가 불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생활불교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불교적 요소가 드러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때 음식물을 적당하게 먹고 남기지 않는 빈그릇 운동은
사찰에서 하는 발우 공양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주 훌륭한 생활 습관입니다.
셋째는 오늘날 우리 한국불교가 당면한 문제라 할 수 있는 불교의 지성화입니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지적으로 매우 발달된 사회입니다.
특히 정보사회로 접어들어서 지식이 하나의 상품이 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남을 대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약점이 있다면 맹신에 빠지기 쉬운 점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맹신이란 반지성적인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합리적인 사고를 무시하고 어리석인 미혹에 빠져버리는 것은
결코 인간의 지혜로운 행동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높은 생각으로 참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들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신행은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인생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참 가치를 바로 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은 산스크리트는 스라다(sradha)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라다의 원 뜻은 모르던 것을 알고 나서
‘아! 그렇구나’라고 수긍하면서 이해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 믿음이 하나하나를 새롭게 깨달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거지요.
그리하여 믿는 것은 동시에 이해하고 바른 뜻을 추구하여
그 뜻에 부합되게 생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실생활에 그대로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보다 깨끗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은 우선 순수한 것입니다.
의심을 하거나 마음에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의심과 불편한 감정이 게재되지 않은 것이 좋은 사이라고 할 수 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마음은 내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살본업경》이란 경전에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려놓았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의 마음을 환경 속에 오염되지 않게 하여 살라고 가르칩니다.
자연환경이 깨끗해야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사람에게 제공되는 것처럼
정신적 공해를 추방하는 길은 서로 신뢰하면서
마음의 순수함을 유지해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오염을 방지하는 자심정화(自心淨化)가 불교신행의 근본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내가 순수한 불심에 젖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보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선근(善根)을 심고 공덕을 닦는 날이 바로 나의 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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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