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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도량, 마음의 도량
1. 봄과 숲, 그리고 수행처
4월입니다. 따뜻한 봄날입니다.
겨울산이 적막했던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없어서였을 거라고 하신 한 스님이 생각납니다.
산새소리와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생동하는 자연의 소리일 뿐 아니라,
생명의 흐름이며 조화(調和)이고 우주의 살아있는 질서와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불자님들!
희망의 새싹들을 생각하며 또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모두들 진정 봄을 맞이하셨습니까?
따뜻한 가슴으로 생명과 질서의 조화로 열려 있는 새봄을 맞이하셨습니까?
봄을 생각하면 소생(甦生)하는 것을 연상하게 되고
그것이 무엇이었든 탄생하는 것은 기쁘게 여기는 것이 보통의 정서인지라
호생오사(好生惡死)라고도 했지요.
모든 생명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이 더 잘 살도록 도와주면 복이 되는 것이고,
그 생명을 못 살게 방해를 하거나 괴롭히고 죽이면
독(毒)이 되어 불행과 고통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이치를 자신의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
모든 생명은 안락을 바라는데
폭력으로 이들을 해치는 자는
자신의 안락을 구할지라도
그는 안락을 얻지 못한다.
우리 불자님들은 언제나 생명 존중의 환희를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자신들이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봄날의 숲과
숲속의 생명들까지 포함하여 함께 생각하며 나누고자 합니다.
2. 부처님의 설법이 살아있는 숲의 도량
먼저 부처님의 설법이 중생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예부터 여러 수행자들이 숲을 이루듯
함께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叢林)이라 하였습니다.
총림은 산스크리트 빈타바나(Vintavana)로, 단림(檀林)이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여럿이 화합하여 한 곳에 거주하는 모습이
마치 수목이 빽빽이 우거진 숲과 같다는 뜻입니다.
특히 들쑥 날쑥 크고 작은 무질서의 숲이 아니라
거의 같은 키의 숲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계율이든 참선이든 간경이든 모두 어긋남 없이
같은 질서와 규율 속에서 여법하게 수행하는 곳을 말합니다.
참선을 위주로 하는 선원, 선찰(禪刹)에서는
공덕의 총림이라고 하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화합을 의미하는 승가는 곧 자신과 타인을 똑같이 소중히 모시고자 하는
‘자비’의 이치가 깃들인 도량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불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항상 정성을 다하는
수행 도량이고 기도처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승가(승가)는 중(衆)의 뜻이니 많은 비구가 한 곳에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 한다.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림(林)이라 하는 것과 같다‘ 했습니다.
지금은 선원, 강원, 율원 및 염불원 등을 갖춘 다수의 수행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도량을 총칭하여 총림이라고 합니다.
3. 행복한 봄날의 나무들과 함께
오늘 저는 4월을 맞은 봄이라는 계절에 산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산에는 숲이 우거지고 그 산에 수행자가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상에서는 말이 나왔다 하면 온통 경제 이야기입니다.
엊그제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택시를 탔고 택시 기사님은 무슨 이야기 끝에 어렵다고,
세상살이가 너무나 어렵다고 많이 걱정을 하셨습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어려우시냐고 질문했더니
경제문제라고 역시 답을 하셨습니다.
살기 좋게 하는 일이 꼭 경제의 풍부함일까요?
물론 살아가는 데 넉넉한 경제력은 삶을 훨씬 윤택하게 하고 편리하게 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쉬게 할 수 있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자연의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몸담아 살아온 이 땅을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허물어져 가는 산하와 한없이 넓게 직선으로 난 대로를 지나면,
어느덧 우리의 금수강산이 극심한 상처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에는 산이 있고 산에는 울창한 숲이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생명이 숨쉬며, 어김없이 수행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이 총림을 이루어 정진하고 있다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불자님들이 맞이하는 이 봄날은 생명의 환희로 충만합니다.
잠시 안으로 눈과 귀를 기울여 우리 자신들의 총림도 조용히 관찰해 보시지요.
그곳에는 겨울을 견디는 동안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언제나 변함없이 새로운 싹을 움트게 하는 생명의 힘이
수물수물 푸른 물을 끌어올리며 빛으로 생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명이 봄을 맞이하여 꽃으로 피어납니다.
마음의 텃밭에 온갖 생명체들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환희가 곧 부처님의 설법으로 형상화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 사랑의 부처님 설법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참가르침의 현장이 곧 봄날이지요.
부처님의 말씀이 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진리의 샘이 되고,
화합의 나무들이 되어 숲으로 형상화된 참생명의 모습들이
총림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사방 어디에든 부처님의 설법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우리불자들이 수행을 생활화하는 전문도량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승려대중이 모여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모든 ‘수행도량’이 곧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화합의 숲이며,
부처의 마음들이 모인 생명의 기쁨 혹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4. 생활 속에서 기쁨이 되는 부처의 나무들
우리 불자들은 출가자 혹은 재가자의 구분 없이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처님 마음의 뿌리는 ‘자비’가 으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남기신 모든 설법에서부터,
가장 최근에는 50년 출가의 생을 사시고,
이를 기념하는 잠언집의 모든 내용을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법정, 조화로운 삶)
라는 한 가지 주제로 표현하신 큰스님의 가르침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해지라는 보편적인 자비심은 단지
우리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불교에서는 무연대비(無緣大悲)를 말합니다.
나에게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모든 중생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하는 존재,
우리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대상이 우리들 자신과 동일 선상에 있는
‘사람’에 국한된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 사람들이 해야 할 일상사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일 수 있지요.
나 자신,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에게 속한 어떤 관계들을
이 봄날을 같은 좋은 모습으로 지니기란
여간한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에게 좋은 공기를 제공하여 우리들의 생명유지가 가장 많은 공헌을 하는
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하는 마음 한 자락 남겨 두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힘이 듭니다.
물론 우리는 방생법회를 통하여 생명 존중을 실천하기도 하고,
청정도량에서는 한 마리의 미물도 소중히 하는 마음을 갖고자 수행의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있어 우리들이 맑은 공기를 숨쉴 수 있다는
현실성에 기초한 타산적인 생각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부처님이 주신 ‘깨달음의 진리’, 즉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그 한 생명, 한 뿌리라는 생각입니다.
나와 더불어 함께하는 모든 것이 곧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과 더불어 있습니다.
불법에서는 이러한 관계들을 한마디로 ‘인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살리는 함께하는 어우러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봄날에 우리와 더불어 살고,
생동하는 그 연초록 잎들을 지닌 숲과 나무들 또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도반이 되어 생명 사랑의 길을 함께 가고 있음을 새겨야 합니다.
우리와 더불어 숲과 나무들 역시 부처님의 기쁨으로 환생하여
이 봄날이 열어주는 생명 축제의 주역이 되고,
말 그대로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불법으로 화현하는 행복한 겨울나무들
이 봄날에는 산중 대부분 총림(사찰)들도 한겨울을 보낸
수풀과 나무들이 복풍한설을 털고 일어나는 부산한 기운에 들뜨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겨울을 안으로만 보듬어 견디면서
시절인연을 기다린 매화가 피를 토하듯 작은 눈을 튀운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곧 겨울나무들의 으뜸가는 절절한 사연이 되고,
한편으로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펼치는 회향의 이치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 불자들은 화엄경의 세계를 통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겨울나무들이 어떻게 시절 인연을 기다릴 줄 아는가를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어느 것으로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겨울 속에서도
봄을 맞이하는 영유와 평안을 주는 ‘화엄의 세계’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화나무 가지 하나도 가장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겨울 눈바람 속에서 이루어냅니다.
이러한 매화나무 한 그루의 시절인연 맺음은 우리가 겪는
봄 꽃샘추위를 몰고 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전히 한 그루 매화는 그 꽃샘추위에서도 더 짙은 열정은
겨울눈 속살을 비집어 토하는 향으로 뿜어냅니다.
어느 것에도 막힘이 없는 불법이 매화나무 가지에 녹아 있음을 보는 것이지요.
이는 곧 꽃이 향이 되고 향이 꽃이 되는 여일한 모습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이렇듯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생명의 잔치의 곧 불법의 모습,
부처의 화현으로 우리와 더불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곧 여일한 ‘화엄의 행복한 세상’이 되어 우리를 평안케 할 것입니다.
어떤 불자 한 분은저에게 자신의 고뇌를 대신 해준
겨울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 불자님들, 우리가 고뇌에서 벗어난다는 것,
특히 배신의 고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벅찬 수행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배신의 감정은 그 배신의 근원이 가장 가까운 부부
혹은 혈육과 같은 절친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그 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이 불자님의 경우에도 그러하였습니다.
배신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오는 시간은 빠른 것이 아니고
더디고 또 더디게 지나가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이 불자님 역시 이러한 시간적 고통을 견디기 위해 침묵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수행 중에 피를 토할 듯한 시시때때로의 오열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한 그루 목련이 여름에 무성했던 그 많은 잎을
하나도 없이 다 내어주고도 여전한 생명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음을 눈여겨 보았답니다.
‘그때 그 목련은 내가 지닌 배신의 고통을 대신해 주듯이
나에게 다가서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저 나무는 가진 것 다 내어주고도 저토록 의연하게 서 있구나.
그리고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구나.
어떤 외풍이 와도 오직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면서
시절인연을 기다리고 있구나.
저 겨울나무와 더불어 함께 사고, 함께 호흡하고,
함께 생명을 느끼자.‘
이런 생각을 그 겨울나무는 부처가 되어 가르치고 있었답니다.
모든 불자님들, 이 봄에는 겨울나무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오직 자신의 몫을 다해 시절인연을 준비하듯이
우리들도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듬는 부처님 마음이 되고,
그 부처님 마음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총림이 되어 향기를 가득 토해내듯,
계.정.혜의 향기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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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 날짜 | 2006-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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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