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풍요로움을 삼보전에 올리며
1.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계절, 가을에
일 년 가운데, 한 해의 풍요로움을
가장 깊이 느끼는 계절은 바로
가을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 가을 무렵에 농부들은
봄과 여름에 걸쳐 흘린 땀의 결실을 맛보게 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든 여름을 이겨내고 선선한 가을 날씨 속에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들판,
따스했던 여름 햇살에 날로 익어 가는 열매,
그리고 그 힘든 계절을 이겨낸 모든 이들의 건강한 얼굴,
이 모든 것이 앞날에 희망을 던져줍니다.
그런데, 이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계절 느낌은
결코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된 힘든 자기 자신의 땀이겠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숨은 공덕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종교인들이 공공 매체에서
'누구에게 감사하며…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거나,
한편 '일용할 양식을 주신 누구누구에게 감사하며…'
라는 기도 소리를 듣습니다.
여기서 그 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에서 그 '감사'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돌린다는 것에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누구는
-사람마다 그 이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절대자 그 누구를 말합니다만,
여하튼 자신의 좋은 일을 다른 이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는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들은 불교에서도,
아니 불교에 있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신도가 저에게
자랑삼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신도는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사 전 합장을 하고 기도를 했더니,
어떤 친구가 물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식사 전에 기도를 하니?"
이 때 그 신도는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응, 불교에서도 당연히 식사 전에 감사의 기도를 하지,
그런데, 어느 특정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가령 이렇게 말이다.
‘이 음식에 깃든 모든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두 손 모아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그 '모든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라는
한 대목에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답니다.
짧은 일화이지만,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어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늘 주위의 도움을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그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늘 주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해
주위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을 다스려 가는 것입니다.
공양 시작 전에 하는 합장 기도가 그렇듯,
아침저녁으로 하는 예불도 그런 의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 예불 속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이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이렇게 보내겠으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는,
이러한 예불하는 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2.삼보전에 예를 올리고
우리가 올리는 예불,
그 속에는 많은 내용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앞서 말한 감사와 하심으로
신심을 굳게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인연을 맺어주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여러 스님(대중)께
감사의 마음을 그 에불을 통해 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정진 수행하여
꼭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강한 다짐도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불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용을 채워나가고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신행 생활 속에 예불이라는 형식을
더욱 거룩한 모습으로 장엄해 나갑니다.
현재 스님들이 강원에서 공부하는 《치문》에는
다음과 같이 예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 하는 예배 교만 벗기 위함이니
그로 인해 몸의 업은 청정함을 얻는 것을
현사 말씀 법다움에 귀의하여 공경하면
다름 아닌 네 자신이 이참사참 얻을지니.
《치문(緇門)》〔佛眼禪師十可行中三節〕
이처럼 예배(예불)는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 속에 이어지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결국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진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조계종의 신도가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삼귀의계와 5계를 수지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삼귀의계는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오늘날 조계종단에서 결정한 내용이 아니며,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강조하신 내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삼세 부처님이 모두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 저녁 혹은 사시 때 올리는 예불문도
불법승 삼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시한 부처님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과,
부처님의 가르침(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과,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여러 보살님 등 승가
(대지문수 사리보살˜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다하여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올리는'칠정례' 예불문은
기존에 사용되어 오던 많은 종류의 예경문을
1955년 종합간략하게 한 것입니다.
(정각 지음, 《예불》, 봉은사출판부, 45쪽 참조)
그러면 무슨 까닭으로 세 가지 귀의할 만한 것만이 있습니까?
이에 《현양성교론》
(한글대장경69《현양성교론》, 145쪽, 대정장31, 511쪽 중) 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 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
유독 여래만은 귀의할만한 것이 되나니
잘 스스로 조복하기 때문이며,
여러 가지로 조복하는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며,
재물로써 공양함은 뜻에 좋아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며,
수행으로써 공양함은 뜻에 좋아하시기 때문이니,
그러한 덕을 갖추므로 말미암아
그이께서 연설하신 법과
그 제자들까지도 또한 귀의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현양성교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귀의하는 행(行)은 어떠한 것인가?
네 가지 귀의하는 올바른 행이 있다고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착한 사람을 친근함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들음이요,
셋째는 이치대로 생각함이요,
넷째는 법과 그 법에 따르는 것을 행함이다.
다시 네 가지 바른 행이 있다고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모든 감관을 잘 껴잡아 들뜨거나
들뜨거나 동요하지 않게 함이요.
둘째는 바르게 배우는 것을 받음이요.
셋째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김이요.
넷째는 때때로 법답게 삼보에게 공양함이다.
삼보에 대한 귀의는 단지 절대자에 대한 귀의가 아닙니다.
앞의 《현양성교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예불할 때의 그 마음이
늘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늘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항상 바른 법을 듣고자 하며,
이치대로 생각하며 법을 따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잘 다스리고, 바르게 배우며,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늘 삼보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한편 마명 스님은 믿음을 언급하며 《대승기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신심들이며, 어떻게 수행하는 것인가?
대략 말하자면 신심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소위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처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믿어서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여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를 구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어서,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사문이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이타할 것을 믿어서
항상 모든 보살들을 즐겨 친근히 하여
여실히 수행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명(馬鳴), 《대승기신론》,은정희 역주,
《대승기신론 소?별기》, 일지사, 359˜360쪽
이처럼 삼보에 예를 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낮추어 절을 하는 행위 이상의 것입니다.
3.삼보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통 경전 등에서는 삼귀의 게송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
지혜와 복덕을 갖춘 존귀한분,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탐욕을 여의신 존귀한, 부처님 법에 귀의합니다.
모든 무리들 가운데 존귀한, 화합 대중에 귀의합니다.
지혜와 복덕을 갖춘 존귀한 분,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중생의 복전이 되려는
무량겁에 걸친 서원과 수행으로 비할 바 없는
복덕을 구족하시고, 위없는 도를 구하려는
무량겁에 걸친 서원과 수행으로 비할 바 없는
지혜를 구족하기고, 대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복덕이 없다면 어찌 그 많은 중생의 복밭이 되겠으며,
지혜가 없다면 어찌 생사의 이치를 알아 고해를 벗어날 수 있겠으며,
자비가 없다면 어찌 중생들을 열반의 저 언덕으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부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우리 이 자리에 함께 있겠습니까?
탐욕을 여의신 존귀한, 부처님 법에 귀의합니다.
법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교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우주에 충만한 진리 그 자체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법을 발견하고 법을 깨닫고
법을 체득함으로써 부처님이 되셨기 때문에
법을 떠나서는 부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법을 보는 자는 여래를 본다ꡑ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무리들 가운데 존귀한, 화합 대중에 귀의합니다.
승가는 부처님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입에서 태어나고,
법의 교화를 따라 태어나며, 법의 재물을 얻은,
하늘과 땅 위의 모든 대중, 모든 모임 가운데서
가장 높고 존귀하고 거룩한 대중입니다.
현재 우리가 세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을 수 있는 것도,
삼보를 지켜나가고 있는 거룩한
승보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법승 삼보는
이 세상에서그 무엇보다 제일 가는 것입니다.
즉, 이 삼보가 항상 세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세간 법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寶)라 일컫는 것입니다.
마치 세간의 값진 보물이 중생에게
소중히 여겨지는 것처럼 삼보는
모든 중생과 모든 대중들이 우러러보고
귀의할 바가 되기 때문에
삼귀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편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살펴보기도 합니다.
삼보에는
동상(同相)․별상(別相)․주지상(住持相) 등
세 종류가 있다.
동상 삼보란
진여의 본체 위에 개치고 비추는 편으로는 불보(佛寶)요,
일정한 궤범이 되는 편으로는 법보(法寶)요,
서로 화합하는 편으로는 승보(僧寶)가 된다.
요컨대
불이 곧 법이요,
법이 곧 승이요,
승이 곧 불이어서 차별이 없다.
별상 삼보라 함은
석가모니․아미타불 등 특정한 부처님이 불보요,
사성제․십이인연 등 특정한 교리는 법보요,
문수보살․보현보살․교진여 등 특별한 불제자는 승보이다.
요컨대 실체적인 삼보를 말한다.
주지 삼보라 함은
이 세상에 존속하기 위한 형식적인 삼보이니,
나무나 돌로 새기거나 비단에 그린 불상은 불보요,
종이에 써서 경전을 이룬 것은 법보요,
머리 깎고 장삼 입은 것은 승보이다.
요컨대 말법인 오늘에 구색을 유지하는 형식적인 삼보이다.
(《불교깨묵》,김월운 편저,《불교로 가는 길》, 경서원, 131쪽)
이처럼 우리가 삼귀의계를 수지하고
삼보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한다는 것은,
결국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귀의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삼귀의의 참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혜능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주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오며,
깨끗함의 중중존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니,
바라건대 자성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서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 삼보에게 귀의하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이요
법이란 바름이며
승이란 깨끗함이니라.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 재물을 떠나고
색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며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할진대
부처님이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님을 보지를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하였고
다른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퇴옹 성철 편역, 《돈황본 육조단경》, 장경각, 154˜157쪽
즉,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모든 중생 다같이
위없는 도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지이다.
스스로 법보에 귀의하여 모든 중생 다같이
거룩한 법 깨달아서 지혜가 바다같이 되어지이다.
스스로 승가에 귀의하여 모든 중생 다같이
화합의 법 얻어서 모든 일에 걸림이 없어지이다'
라는 다짐 속에 정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어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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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