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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 청량사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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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 청량사


 가을은 바람 맛이 영 다르다.
속살을 털어 낸 나무 그늘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나뭇잎들.
가을이 어느새 하느작하느작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길을 떠나고 있다.
지난 세월의 잔해들이 낙엽으로 쌓여만 간다.

응진전(應眞殿) 돌벽에 속절없이 피었다 진 말채꽃,
가슴에 길 하나 만들어 놓고 빈손으로 서 있다.
바람도 청량사 유리보전 풍경에 들면 이내 떠나지 못한다.
붉은 햇살도 청량사 5층탑에 들면 바람과 소리를 베고 눕는다.


△청량산에 가을이 자리를 폈다.
아무리 밀어내고 쫓아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너무 곱고 아름다워 마음의 병이라도 생길 것 같다.

적멸(寂滅)이다.
들꽃처럼 앉아 있는 자소봉 아래 바람은
쉰 울음으로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다.
금탑봉 위 아련히 머물다 떠나가는 한 조각 구름 위로
햇살 한 줌 외로운데 바람은 내 가슴에 하나 둘 쌓여 가슴에 탑을 쌓는다.
벌거벗은 웃음들이 유리보전 기왓골을 기어오르는 날
청량산에 가면 나는 새가 된다. 바람이 된다. 그리고 하늘이 된다.
보현보살이 있다는 아미산, 관음보살이 산다는 보타낙가산,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청량산은 중국 불가에서 꼽는 3대 명산이다.
636년 불법을 구하러 당나라에 건너간
자장 스님이 수도한 곳은 이 세 곳 중에서 청량산이다.
자장 스님은 그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유품과 진신사리를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에 나누어 모셨다고 한다.


△청량사엔 가진것도 가질것도 없는 빈 하늘 그리고 바람만이 누워있다.


이른바 현존하는 5대 적멸보궁이다.
당시 자장 스님은 오대산을 청량산으로 여겼다.
그래서 진신 사리 중에서도 정골 사리만을 그곳에 모신 것이다.
“너희 나라에도 청량산이 있으니 거기서 나의 진신을 보리라.”
자장 스님은 꿈에 나타나 문수보살의 말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오대산의 이 산, 저 봉우리에서 기도했다.

훗날 경북 봉화군의 한 작은 산에 들렀을 때
“아, 이 산이 청량산이거늘”
오대산은 청량산의 다른 이름이기는 하지만
지금 청량산이라고 부르는 곳은 봉화 땅의 청량산뿐이라는 이야기다.

청량사를 안고 있는 청량산은
낙동강 상류의 널찍한 물줄기가 옆구리를 스쳐 흘러가고 있어
산과 물의 조화로움이 한층 운치를 더하고 있는 곳이다.
절집을 안고 있는 산은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이 남다른 곳이었다.
의상, 원효, 서산, 사명 대사 등 무수한 고승대덕들이
이 산과 절집을 찾아 수양을 쌓았으며,
문수봉, 반야봉, 의상봉, 연화봉, 보살봉, 금탑봉 등
산봉우리들 또한 불교의 기운을 담고 있어
산과 절집이 지혜와 성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청량사는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청량산의 열두개의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감싸 안은 형국이니
이 연화장 세계의 중앙인 곳에 연꽃의 수술 자리에 절집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청량사는 청량산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연화봉 기슭에 있는 내청량사와 금탑봉 아래에 있는 외청량사를 아울러 말한다.
이 내외의 청량사는 663년(문무왕 3)에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과
의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창건 연대로 추측해 보건대
이때 의상은 중국에 머물러 있을 때라
원효가 창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후에 송광사의 16국사 끝스님인
법장 고봉(高峰, 1350~1428) 선사가 중창했다.
고봉 선사는 20세에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는데
젊어서 승과에 급제했으나 명리를 위하는 길이라 하여 이를 버리고
입산수도하던 중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선사는 항상 머리털을 두 치가량 기르고
바라 하나로 여러 곳을 돌아 다녔으며
풀피리를 잘 불어 사람들은 선사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청량사에 가면 빈 마음 하나라도 넉넉하다
가진것 없는 사람도 풍요로워진다

선사는 30년 동안 명산 대찰을 찾아 소요하다가
청량산에 와서 청량암을 짓고 선정을 닦기도 했다.
서산 대사는 이런 대사를 추앙해 ‘법장 대사’라는 시를 남겼다.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 오고
물거품은 불에 태웠네
우습구나 저 소를 탄 사람
소를 타고서 소를 찾누나


 또한 유리보전은 옛 연대사터로
《택리지》에서는 “청량산에는 연대사가 있고
절에는 신라 때의 김생이 쓴 불경이 많다.
근래 한 선비가 그 절에서 글을 읽다가 불경 한 권을 훔쳐 집에 왔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곧 염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 일가 사람이 두려워하여 불경을 즉시 절에 돌려 주었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청량사는 고봉 선사 이 후 오래동안 폐사로 남아 있어서
그 역사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다만 창당시 ‘연대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며
주변에 33곳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현재 내청량사에는 공민왕이 쓴 ‘유리보전’ 현판과
종이를 녹여 만든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과 심검당,
심우실, 범종각, 부처님 진신 사리 5과를 모신
5층 석탑, 3층 석탑, 산신각, 전통 찻집인 안심당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산사에 묻는 물 안개 딱고 보니 탑은 이뿐 달 하나 껴안고 살고 있다.




△내 가슴속 작은 뜨락에 당신 자리 하나 마련해 두었습니다.

또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고
아래로는 낭떠러지 바위가 마치
3층으로 이루어진 금탑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금탑봉이라 불리는 봉우리 아래 들어선 외청량사에는
노국 공주가 16나한을 모시고 기도 정진하던 응진전이
옛 모습을 잃지 않고 남아 있다.
청량산엔 온통 바람 천지다.

굴절없이 울고 있는 풍경 소리에
바람은 소리로 다가와 그리움을 남겨 놓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 고운 산들을 이고 목을 길게 내민 청량산 열두 봉우리엔
암벽마다 울울이 쌓인 솔바람 소리만이 깃들어 있다.

가을 청량산은 감출 줄을 모른다.
지난 일들을 나무와 바위 속에 숨겨 두고 있을 뿐이다.

나는 풍경이 왼종일 수선을 떠는 심검당 추녀 끝에 서서
몇 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하고 바람 소리 들으며
와르르 쏟아지는 햇살 맞으며 살아 온 수많은 기억의 파편을 놓아준다.
부처님 뜨락에 산바람이 옹기종기 모여 흐느끼고 있는 산사.

누군가 버리고 간 무더기무더기 쌓인 쑥대밭을 밟으며
그리움 묻은 인연의 낡은 옷자락 부여잡고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에 쌓인 먼 아픔의 손짓 하나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라며 오대산
| 글쓴 날짜 | 2005-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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