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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렁각시 김복남 보살님
이    름 : 법보신문 조회수 :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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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렁각시 김복남 보살님
2013.01.28 17:22 입력 발행호수 : 1180 호 / 발행일 : 2013-01-30

젊은 스님 고생한다 위로하고
남몰래 반찬놓고 사라지던 분
그 따스한 손길에 지금도 먹먹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봉화 청량산. 땅거미가 내려올 즈음 청량산 청량사 도량에는 하나둘 연등이 켜진다. 겨울 밤 고즈넉한 모습의 청량사를 보고 있으면 30여년 전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청량사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청량사뿐 아니라 사하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고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청량사 노보살님들의 자랑거리가 된 자식들이 아주 많다. 살기 어렵다던 시절을 한참 거슬러 올라왔음에도 봉화 산골은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고, 그 안에 청량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다. 유리보전만 우두커니 서 있는 작은 암자에 처음 소임을 맡고 내려 왔을 때 깊은 밤 촛불을 켜며 눈물을 흘렸던 날도 많았던 것 같다. 부엉이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던 어두운 산사에서 겨울밤은 더더욱 외로운 나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날들이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소중한 시간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뒤돌아보니 그날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없었을 것이다.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나의 삶 속에 그 시간은 진정 나를 찾고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보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이곳 오지마을에서의 포교를 발심하게 되었다. 절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사하촌에 내려가 지냈던 날이 더 많았고 오르락내리락 불사하는데 여념이 없어 공양을 거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동화된 기구라 함은 경운기가 전부였고, 모두가 핸드메이드였으니 바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탈진 산기슭에 위치한 청량사에는 산짐승들의 왕래가 더 많았던 터라 공양주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고 모든 것을 손수 해결해야 했다. 불사할 자재도 지게에 지고 비탈진 산길을 오르내렸다. 고된 노동이 계속 이어지자 어느 날인가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심한 몸살로 며칠째 몸져누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에 전화가 있을 리 만무하고 간간히 찾아오는 산짐승에게나 소식을 전할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외롭고 아팠다.


이틀간 정말 심하게 앓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거칠지만 따스한 손길이 느껴져 눈을 뜨게 됐다. 속가의 어머니를 닮은 보살님. 보살님은 콩밭에서 일하다 운력하는 내 모습을 몇 번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째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돼 올라와 보셨던 모양이다.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처럼 “스님! 살살 하시오. 이러다 큰 일 납니더”하시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울컥 눈물이 나려 했지만 체면상 그렇게는 못하고 감사의 인사만 건넸다. 그렇지만 우렁이 각시처럼 몰래 반찬거리를 놓고 사라지시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바람으로 아침공양을 했던 날이 참 많았다.


찾아 가는 불교, 농촌 포교는 나의 발심만으로 이뤄진 게 절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우리 청량사의 노보살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몇 년 전 먼 길 떠나신 어머니 같은 우리 김복남 보살님. 이 글을 쓰는 내내 그 분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현 스님
젊은 스님이 더욱 발심해 수행정진할 수 있게 힘이 되어 주신 나의 우렁각시 보살님. 싯다르타도 그렇게 부처님이 되셨을 것이다. 부처님 되시고자 정진하는 불자님들의 가슴 속에 밝고 환한 등불로 가득하길 기도한다.

청량사 주지 지현 스님

| 글쓴 날짜 | 201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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