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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3>완행버스 타고 봉화 닭실마을
이    름 : 매일신문 조회수 :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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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3>완행버스 타고 봉화 달실마을
인터넷 정보 믿고 오면 큰 일 "시골 시내버스 시간은 달라요"
한겨울 봉화군 청량산 종합상가지구는 을씨년스러웠다. 한파특보가 겹친 평일에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하지만 퇴계 이황이 사랑했던 청량산의 속살을 엿보지 않고 떠날 수는 없는 법. 버스 시간에 맞춰 청량산을 둘러본 뒤 봉화 방면으로 가기로 했다. 청량산과 봉화읍에는 하루 왕복 4회 버스가 오간다. 오전 7시와 10시 버스는 시간을 맞추기 빠듯했고, 발길을 재촉하면 오후 2시 30분 봉화행 버스는 탈 수 있을 듯했다.

봉화군에는 버스 번호가 따로 없다. 기`종점을 표시한 완행버스가 운행하고, 중간중간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 기본요금은 1천200원이지만 거리에 따라 추가 요금이 붙는다. 청량산에서 봉화까지 버스 요금은 4천100원. 봉화읍에서 강원도 태백과 인접한 석포면까지 가려면 8천600원을 내야 한다. 이건 안동에서 동대구까지 운행하는 일반 고속버스 요금(6천400원)보다도 비싸다. 정말 시내버스 맞나 싶다.

◆연꽃처럼 자리 잡은 청량사

오전 9시 30분. 바람 샐 곳 없이 채비를 단단히 하고, 생수 한 통을 배낭에 꽂고 길을 나섰다. 훅훅 내뱉는 입김이 얼음 안개처럼 눈썹에 달라붙었다. 청량산 삼거리에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청량교를 지나면 매표소인 '청량지문'이 보인다. 등산로 안내도를 보니 폭설 탓에 등산로 곳곳이 통제된 상태. 경일봉과 연적고개로 가는 길은 모두 막힌 상태였다. 청량산 하늘다리까지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청량산의 4부 능선쯤인 청량사까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진다. 하얗게 얼어붙은 눈길인데다 끝도 없이 오르막이다. 한참을 걷다가 목이 말라 꺼낸 물통은 이미 반쯤 얼어 있었다.

청량사로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매표소에서 2㎞가량 떨어진 선학정에서 바로 청량사까지 오르는 방법. 또 하나는 선학정에서 900m를 더 걸어 입석까지 간 뒤 등산을 하는 방법이다. 한번이라도 청량산을 와봤다면 입석으로 올라가 청량사 남쪽 포장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을 거다. 입석에서 청량사에 이르는 길은 트레킹 코스로 적합할 만큼 경사가 완만하고 경치도 좋다. 반면 선학정에서 청량사 일주문으로 오르는 포장길은 쉴 틈 없는 급경사인데다 온통 나무에 가려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청량사에 도착한 뒤에야 반대로 돌았음을 깨닫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선학정에서 급경사를 30분 정도 걸었을까. 서너 발만 걸어도 턱턱 막히는 가슴을 달래길 여러 차례. 저 멀리 청량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량사는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 선학봉, 자소봉 등이 주변을 물샐틈없이 감싸고 있다.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청량산이지만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연꽃처럼 아늑하고 포근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대웅전 앞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세와 오층석탑 뒤 눈 덮인 풍경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절경이다.

◆이름 없는 스님과 은퇴한 원조 맛집

청량사의 정취에 한껏 취하다 보니 벌써 오전 11시가 넘었다. 서둘러 내려가다 범종각에서 한 노스님과 마주쳤다. 스님은 "15년 전만 해도 청량사 주변은 거의 다 돌무지였다"고 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청량사에는 법당에 주지 스님이 사는 요사채가 전부였어요. 워낙 산세가 험해서 길도 불편했고, 밧줄을 타고 올라와야 하는 곳도 많아서 등반객이나 참배객들만 간간이 찾아오니 조용하게 수행하기에 좋은 절이었지요."

20년 전만 해도 청량산 안내소부터 온통 비포장길이었다. 신도들은 낙동강을 건너 걸어서 청량사까지 왔다. 길이 험해 오르기도 힘들었고, 밧줄을 잡고 올라와야 하는 구간도 많았다. "30~80리 산길을 걸어야 올 수 있는 절이었죠. 청량사 약사여래불이 기도 효험이 좋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공들여 찾아올 정도로 간절한 소원이라면 이뤄진다는 뜻 아니겠어요?"

청량사도 1993년 청량산도립공원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본격적인 정비가 이뤄지면서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로가 포장되고, 등산객이 부쩍 늘었다. 절의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지금은 매년 10월 산사음악회가 열리고,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찾아올 정도로 템플스테이가 활발한 절이 됐다. "스님은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할 말을 잃은 기자에게 스님이 뜻 모를 한마디를 남기며 등을 돌렸다. "눈을 보니 영 맹탕은 아니네."

청량산 입구까지 내려오니 낮 12시 30분. 왕복 3시간이 걸린 셈이다. 허기 탓인지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봉화의 토속음식인 '봉성돼지숯불구이'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상가지구 안 '오시오숯불식육식당'에 들어갔다. 가게 안은 손님이 없어 한적했다. 솔잎숯불구이 2인분을 주문하고는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젊은 주인은 고기를 구우러 들어갔고, 나이 든 여주인은 TV 삼매경에 빠졌다. "여기서 장사 오래 하셨느냐"고 물었다. "봉성면에서 하다가 작년에 이리로 왔다" 한다. "35년이나 돼지고기를 구웠는데 지금은 장사를 접고 막내아들이 하는 가게에 왔다갔다해요." 봉성돼지숯불구이의 원조로 불린 여화자(69) 씨다. "아니, 왜 장사를 그만두셨어요?" "힘도 달리고 연탄불 앞에 구부정하게 있으니까 손님들도 불편해하는 것 같고… 그래서 은퇴했지 뭐." 솔잎 향이 나는 돼지고기구이를 입 안으로 우겨넣었다. 여 씨가 상 위에 놓인 당귀 뿌리 장아찌 접시를 가까이 밀었다. "이거랑 같이 먹어봐요. 내가 개발한 건데 당귀 껍질 까는 게 귀찮으니까 요새는 아무도 안 해요." 한참 동안 TV를 보던 여 씨가 푸념하듯 말했다. "참 그동안 순진하게 살았지. 주변에서 하도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까 그런 줄만 알았지.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모아둔 돈도 없고 참…."

◆봉화 인심, 고마워요

춘양면 서벽리 우구치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강원도 영월과 인접한 우구치마을은 한때 남한 최대 금광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에 개발한 우구치 금광은 1980년대 들어 잇따라 폐광했고, 번성했던 마을도 쇠락했다. 우구치로 가려면 청량산에서 봉화읍 탑평(유곡1리) 정류장으로 간 뒤 ‘봉화-금정(애당2리)'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최단 코스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1㎞ 남짓 걸어 들어가야 한다.

오후 3시 10분쯤 탑평(유곡1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교통서비스는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하는 '봉화-춘양`서벽`두음' 버스를 타면 된다고 나왔다. 하지만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두 대의 버스가 지나갔지만 모두 다른 방향이었다. 오후 4시가 넘어 세 번째 버스가 왔다. "금정까지 가느냐"는 물음에 "금정 가는 버스는 오후 4시 40분이 넘어야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당초 금정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10분과 오후 4시 40분 두 차례가 전부였다. 인터넷을 맹신했던 게 화근인 셈이었다.

막차를 탄다면 우구치마을에 가더라도 어둠이 내린 뒤다. 가로등도 없는 산길을 1㎞나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가까운 달실마을(옛 닭실마을)로 가기로 했다. 탑평정류장에서 달실마을까지는 2.5㎞. 걸어가면 30~40분. 버스를 타려면 그만큼 기다려야 한다. 복잡해지는 머릿속. 그때 눈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어디까지 가니껴?” “달실마을이요.” “타요. 타!” 명색이 '시내버스 여행'인데 택시를 타도 될까?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탔다. "아까부터 왔다갔다하면서 봤는데 계속 거기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디로 가나 싶었지." 5분가량 달리니 달실마을 앞이다. "얼마 드려야 되죠?” “천원만 주세요” “네?”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버스요금의 반도 안 되는 천원이라니. 택시 기사는 돈을 받을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돈을 받은 기사 아저씨가 명함을 건넨다. “뭐든지 궁금한 거 있으면 전화하세요."

어느덧 해가 산 머리에 걸렸다. 마을 안을 가볍게 돌아본 뒤 마을에서 유일한 민박집을 찾았다. 전화를 하니 마을회관에서 권수기(77) 할아버지가 신발을 꺾어 신고 뛰어나왔다.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에서 화투를 치던 이동정(75) 할머니가 부리나케 판을 접는다. 노부부는 마치 생전 처음 손님을 맞는 양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 할머니가 화투 담요를 쓱 밀어두고 거실 전기장판에 손님을 앉힌 뒤에야 싱긋 웃는다. 영락없는 우리 외할머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달실마을 민박집 이동정 할머니

이동정(75) 할머니가 봉화읍 달실마을로 시집을 온 건 스무 살 때였다. 할머니의 고향은 도산서원과 가까운 안동시 도산면 섬촌. 시집온 마을은 가난했다. 안동 권씨가 터를 잡은 양반동네였지만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부족했다.

"말도 못하게 가난한데 남자들은 양반 후손이라고 일을 안 해. 시집을 왔는데 신랑이 나무 할 줄도 모르는 거예요. 집도 담장도 엉망인데 아무도 고칠 생각을 안 해."

살림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운 건 여자들이었다.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들만 넷인데 둘은 공무원이고 둘은 회사 다녀요. 다들 잘됐지. 부모한테도 잘해요. 요즘엔 전방으로 군대 간 큰손자가 걱정이라요."

요즘 이 할머니의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는 '노래 가사'를 읽는 거다. 유행가 가사가 아니라 조선시대 양반집 부녀자들이 즐겨 지었던 '내방가사'다. "그게 뭐예요?" 묻기가 무섭게 좌우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시작한다.

"태백산 나린 용이 영지산이 높아서라/ 황지의 소식물이 낙천이 맑아서라/ 퇴계수 돌아들어 온계촌 올라가니/ 노송정 옛집되어 대련이 나시거늘."('도산별곡' 중에서)

이 할머니의 노래가 3분 넘게 막힘없이 계속됐다. "도산서원의 전경을 노래로 지은 건데 참 좋지요?"

요즘 할머니는 ‘백발허사가’를 외우려 노력 중이다. "빈손으로 가는 사람/인정쓸길 가이없어/ 공수레 공수거니/ 적선하고 적선하세~."

이 할머니는 눈이 어두운 친구들을 위해 달력 뒷면에 가사 전체를 크게 써서 나눠줬다. 본인은 책자를 보고 돋보기로 봐가면서 일일이 손으로 썼다.

"참 희한하지. 요즘은 예닐곱살 때 배웠던 가사가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 누워서 눈감고 있어도 생각이 나거든. 시집살이하고 애들 키우고 살림살이 할 때는 정말 까맣게 잊었는데 지금은 머릿속에 다 떠올라요."

할머니는 "민박을 하니 젊은 사람들하고 얘기하니 참 좋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한테 말도 붙이고, 싹싹하게 참 잘한다면서. 그래서 또 웃으니 안 늙는 것 같다면서. 할머니의 주름마다 흘러내리는 미소가 참 곱다. 장성현기자

매일신문 공식트위터 @dgtwt / 온라인 기사 문의 maeil01@msnet.co.kr
| 글쓴 날짜 | 2013-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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