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 새벽 4시반 봉화 청량사 유리광전. 부스스한 얼굴로 난생처음 새벽예불에 ‘끌려나온’ 중학생 14명은 예불문을 무릎 앞에 펼쳐놓고 어설픈 목소리로 ‘지심귀명례…’를 읊조렸다.

전날 저녁 스님이 가르쳐줬건만, 언제 절하고 언제 몸을 일으켜야 하는지 서툴러 자기네끼리 키득거리는 아이들도 있다. 겨울을 코앞에 둔 산사의 새벽은 찬기운이 싸늘하다. 저마다 두터운 겨울점퍼를 준비했지만, 예불을 마칠무렵 법당안에는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나둘 겉옷을 벗어놓을 무렵, 예불은 끝났고 ‘108염주 꿰기’가 시작됐다. 가장 큰 염주알에 자기 이름 세글자 정성껏 적어놓고 1배에 1개의 염주알을 꿰면서 마음 속 간절한 소원을 가슴에 새겼다. 절에 익숙한 어른이 그냥 108배를 하기도 만만치 않은데, 이제 열여섯살 먹은 어린 청소년들이 1배하고 엎드려 염주알 꿰기를 108번 반복하기란 불편하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표정은 진지했다.

봉화학교 학생 14명 예불과 발우공양 기본

경찰관ㆍ교사도 함께 스님과 차담 나누면서

마음 열어놓고 웃음꽃

얼렁뚱땅 절하고 대충 꿸 줄 알았지만, 참가학생 14명 중 단 한명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배 한 배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리는가 하면, 마음에 숨겨놓은 번뇌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듯 지극한 일념으로 염주알을 꿰었다.

경찰관 4명과 인솔교사도 아이들 틈에서 함께 했다.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왔으면 법당 한쪽에서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고 있을 법도 한데, 아이들보다 더 지극한 정성을 보였다.

템플스테이를 지도하는 비구니 수암스님은 아이들에게 “애썼다”, “대견하다”, “훌륭하다”면서 흐뭇한 웃음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정성껏 꿴 염주는 제가 예쁘게 갈무리해서 가실 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 나쁜 마음 여의게 해달라는 여러분들의 서원이 녹아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염주가 될 것입니다.” 수암스님은 19개의 108염주를 불단에 올리면서 이같이 말했다.

원예치료 시간에 자기 마음에 맞는 화분에 그림을 그리는 여학생.
“빨리빨리 대충해도 될텐데…” 눈에 띌 정도로 정성을 다해 염주를 꿴 고민석(가명, 봉화중 3)군에게 물었다. “처음엔 잘못한 행동에 대해 후회도 하면서 뉘우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그러다가 ‘잘 돼야지, 잘 돼야 한다, 잘 될거야’라는 생각만 했어요. 108배를 마치고 나니까 몸과 마음이 정말 개운합니다.”

전날 밤 수암스님과의 차담에서 “출가하고 싶다”는 말을 해 친구들의 놀라움과 박수를 받은 김동우(가명, 봉화중 3)군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108배를 회향했다.

스님은 차담자리에서 김 군에게 “아직 미성년이기에 부모님의 허락을 득해야 하지만,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출가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도는 문이 없으니 언제든지 바람처럼 와서 대자유인이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차담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김 군은 “정말로 스님이 되어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서 “이렇게 좋은 절에서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108염주 꿰기에 이어 참선의 시간이 이어졌다. 예불부터 1시간 반이 넘어갔지만 아이들의 표정에는 지루함이 없었다. 다들 스님의 가르침대로 꼿꼿한 자세로 바르게 앉아 참선에 들어갔다.

“엄지손가락을 맞닿은 채, 눈을 감지 말고 혀는 입천장에 붙이세요. 맞물린 손가락이 떨어지면 망상에 떨어진 것입니다. 들이쉬는 찬 숨과 내쉬는 더운 숨을 관(觀)하세요. 죽비소리에 맞춰 10분간 참선에 들어가 봅시다.”

새벽 6시가 넘자 칠흑같은 경내는 동트기 전 푸른 기운을 내뿜었다. 아이들은 탑전에 올라 바닥에 드러누워 친구들과 함께 별을 헤아렸다. “아이 추워~ 아이고 발 시려~” 여기저기서 탄성도 나왔지만 스님은 새벽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과 잠시라도 눈을 맞춰보라고 했다. “사실 하늘에 빛나는 저 별은 별처럼 보일 뿐 별이 아니에요. 인공위성이랍니다. 호호.”

아이들은 스님에게 속았다고 하면서도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산사의 맑은 기운, 그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만끽한 기쁨에, 템플스테이에 오기 전 경찰서에서 만났을 때와는 표정이 확 달라졌다. 첫날에는 취재카메라만 보면 피해다니더니 하룻밤 사이에 “언제 신문에 나와요?”, “나 좀 찍어주면 안돼요?” 등의 질문을 하면서 카메라를 따라다녔다.

아이들이 변한 요인은 여러가지다. 이른바 모범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차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은 시간, 또한 자신들의 하찮은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준 자비로운 스님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인솔교사로 참여한 봉화중 김혜정(32) 교사는 “어젯밤 9시가 넘은 시간에 교장.교감선생님이 찾아와 잠들기 전 아이들을 격려하고 가셨다”면서 “자신들을 감싸주는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교사로서도 흐뭇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학생들은 일부 신청자를 제외하고는 ‘그린마인드제도’라는 교내 벌점제에서 말썽을 피운 아이들이 대다수다.

함께 밥먹고 차마시고 예불과 108배를 올리면서 장난도 치고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 틈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은 봉화경찰서 김재민 경사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도 청소년임을 감안한다면, ‘경찰개입은 곧 처벌’이라는 형사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적 상처를 회복케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연과 불교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템플스테이가 마음치유에 좋은 약이 되리라 생각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청소년기 템플스테이는 자기 돌아보는 귀한 추억”

이대형 봉화경찰서장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대안이 있겠지요.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말썽피우지 말라고 백번천번 계도하는 것보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스님들과의 편안한 차담(茶啖)자리를 만들고 각자 마음속에 쉼터를 열어준다면, 그야말로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대형(46, 사진) 봉화경찰서장은 군내 청소년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템플스테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서장은 “템플스테이는 신앙행위라기 보다, 학교나 가정에서 해줄 수 없는 인성교육의 장으로서 청소년들에게 가장 유의미한 프로그램”이라며 “지난 8월 처음 실시한 이후 호응이 높아 이번에 두 번째로 템플스테이를 열게 됐다.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께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봉화경찰서가 선택한 ‘무대’는 봉화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절, 청량사다. 8월의 템플스테이에선 이 서장이 직접 청량사 야외법당에서 아이들에 둘러싸여 상담을 하고 격려도 했다.

지난 10월17~18일 열린 두 번째 템플스테이에선 바쁜 업무로 인해 청량사까지 함께가진 못했다. 대신 템플스테이에 앞서 경찰서에서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서장은 “학창시절에는 자신이 평생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것이 굳이 공부 계통이 아니라 해도 끊임없는 훈련과 반복으로 누구나 자기분야에서 ‘달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서장은 또 “청량사에서 절밥 먹고 하룻밤 자면서 청량한 기운을 받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며 “내가 있으면 남이 있다는 것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이 서장은 이 날 학교폭력 근절 문구가 새겨진 USB도 경찰서에서 자체 제작해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대구 출신의 이 서장은 지난 7월 봉화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 독실한 불자 집안에서 자란 이 서장은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 팔공산 선본사에 자주 갔었고, 지금은 부인이 불자라서 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개인적인 종교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집무실 책상위에는 <서장>과 <백일법문> 등 불교서적이 쌓여 있었다.

[불교신문 2862호/ 11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