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산천의 앞 그림자. 뒷그림자.
저녁노을 속으로 쓰러져 가고 있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갈구 했는지.
그것은 묻지 말도록 하자.
오직 하나.
진실로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갔는지를
참으로 뉘우침 없이 일 년 열두 달을 견뎌 왔는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의 고통과 연마 속에서
비로소 수줍은 듯 꽃봉오리처럼 피어나는 게 아닐까?
참 많고 많은 시절을 지나 오로지 진정한 한 생명으로
새로이 태어나지 않겠는가.
삶은 견디기 어렵고 피폐하지만
뜨거운 여름날 머나먼 철길을 따라
떠나가는 것 같지만 어이하랴.
우리네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을 돌며
까르르 웃음 짓듯 그처럼 이웃과 함께
울며 웃으며 지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아주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이들의 아픈 삶을 생각하며
돕는 일에 동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시대의 힘이 아니겠는가!
두 평도 채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다섯, 여섯 식구가 모로 누워 잠을 자며
겨우 가까스로 끼니를 해결해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이웃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여러 종교 단체들과 사회의 봉사 모임들이
연말이면 산동네의 어려운 사람들과 독거노인들을 찾아
한 포대의 쌀과 김치와 라면 등을 나눠주며 위로하지만
그것은 한 때 한순간의 위로일 뿐이다. 어찌하랴!
부유 계층들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시며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즐기는 동안
겨우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는
불쌍하고 불쌍한 선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는 이같이 어려운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살려 두어야 한다.
누구하나 보살펴 주지 않고, 챙겨주지 않는 적막한 쪽방에서
이제 겨우 다섯 살 난 여자 아이가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해
그 작은 손으로 흰죽을 끓여 떠먹이고 있는 모습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아이가 자라 나중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상상을 하며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될지 모르겠다.
그 아이를 보며 우리는 염려해야 한다.
사회와 세상사를 아주 좋지 않은 눈길로 명시하며
분노의 몸짓으로 뚜벅뚜벅 걸어갈지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딱 한 끼만 드셨다.
다른 두 끼 음식은 이웃들이 먹을 것을 염두 해 두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부처님의 그 자비스런 행적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신비로운 미소 속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겨울.
이 겨울을 마감하듯 펄펄펄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고 쌓여 온 산천을 뒤덮고
조그만 마을의 작은 초가지붕을 덮는다.
소담스레 눈이 내리고 쌓이는 그 마을에
어린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떠들며
하루 종일 까르르 웃어 대고 있다.
평화가 있고 인정이 넘치는 그런 마을로
지금 나는 달려가고 싶다.
그곳으로 가서 그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뛰놀고 싶다.
한해를 보내며 참 많고 많은 사연들을 씻어내며
가만히 이 산중의 새벽안개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이 세상 모두가
더욱 안녕하길 기원하며.....
심우실에서....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