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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불교건축-불탑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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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

탑이란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 또는 ‘투우파’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원래는 ‘무덤’을 의미한다. 기원전 566년 경
인도의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난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고자 왕성을 나와서
오랜 고행과 수도 끝에 깨달음의 진리를 터득하셨다.
그 후 부처님은 많은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고 열반에 들었는데
제자들이 시신을 다비하니 여기서 수많은 신골과 사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때 제자들은 서로 부처님의 사리를 많이 가져다 탑을 세우려고 하다가
결국 공평하게 사리를 나누어 8기의 탑을 세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불경에 전해오는 최초의 탑에 대한 내용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최초의 탑을 ‘근본팔탑’ 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탑이 곧 부처님의 무덤이었으므로
생전의 부처님을 대신하여 신도들로부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아쇼카 왕은
이 탑들을 헐고 사리를 다시 나우어 전국 방방곡곡에 팔만사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산치, 바르후트, 부다가야, 아마라바티 등지에 남아 있는
거대한 인도의 고탑들은 인도 고유의 불탑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탑들은 대체로 돌이나 별돌을 이용하여
둥그런 몸체를 거대하게 조성하고 꼭대기에는
성인의 무덤임을 상징하는 일산 모양의 보륜장식이 세워져 있다.

또한 탑의 둘레에는 난간을 두르고 사방에는 탑문이 세워지며
여기에는 부처님의 행적, 전생 설화, 공양도 등이 새겨지고
아울러 보리수, 법륜, 발자국, 금강좌 등이
부처님의 몸체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나타난다.
당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함부로 새기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는 탑만이 부처님과 동등한 숭배대상이 되었고
사원의 공간배치에서도 탑이 항상 중심부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불상이 등장하기까지 약 5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불상이 만들어진 뒤에도
탑은 여전히 신앙의 핵심 대상물로서 오늘날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다.

목탑

나무로 만든 목탑은 인도에서는 드문 편인데 중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덕여왕 때 세워진 황룡사 구층목탑이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그 높이가 무려 80m나 된다.

백제나 고구려에도 이런 목탑의 예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재료의 특성상 고려시대 이전의 것은 남아 있지 않고
그 터만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는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 등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많은 목탑이 조성되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 두 목탑은 비록 조선시대에 세워졌으나
삼국시대부터 계승되어온 한국 전통의 목탑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근거로는 백제 때 처음 조성된 미륵사지 석탑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과 비슷하며,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고대의 단칸 목탑들이
쌍봉사 대웅전과 매우 유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법주사 팔상전은 넉넉한 모양과 웅장한 자태
그리고 안정감 있는 형태 등에서 동양 목탑의 최상급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석탑

목탑은 그 규모와 품위 면에서는 으뜸의 보탑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신도들이 탑 내부에 자유오리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내부에 불상과 불단 등으로 장엄하게 꾸며질 수 있었다.
그러나 목탑은 세우는 데에 경비와 공력이 많이 드는 반면,
재질이 오래 견디기 어렵고 전쟁이나 화재 등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따라서 좀더 견고한 재질로 탑을 세워
오래도록 탑이 보전되기를 기원하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석재를 이용하여 석탑을 세우게 되었다.
석탑은 목탑보다 견고하고 풍화에도 잘 견뎌
영구적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양질의 화강암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기 때문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석탑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석탑은 우리나라 탑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 천여 기가 알려져 있으며,
가장 오래 된 석탑으로는 전북 익산 미륵사 터에 있는
석탑, 충남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리고 경북 경주의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이 있다.

전탑

전탑은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탑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흔치 않으며 안동 신세동 전탑이 대표적이다.
신라의 유일한 석탑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처럼 잘라 층층이 쌓아 탑을 세웠는데,
이러한 축조방식은 중국의 전탑을 본뜬 것이다.

이처럼 백제는 목탑을 본떠 식탑으로 재현하고,
신라는 전탑을 모방하여 석탑을 조성함으로써
백제와 신라는 석탑 조성의 성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되었다.

특수형 석탑

통일신라시대에는 일반형 석탑과 전혀 형태가 다른
특수형 석탑도 등장하였다.
이미 통일신라시대의 전성기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석탑의 조탑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때부터는 석탑의 형태에서도 새롭게 응용된 형태를
자유자재로 고안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불국사 다보탑,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등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수준 높은 조탑술로 창작된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다.

특히 다보탑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어느 불교국가의 탑과도 비견될 수 없는 화려하고 장엄한 석탑으로 조성되었다.
당시의 조탑 수준은 다보탑 하나로도 충분히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는 기단부가 둥글게 조성된 석굴암 앞 삼층석탑,
기단이 연꽃무늬 불상대좌를 닮은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기단부 위에 탑신 괴임대를 끼운 보령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 등이
특수형 석탑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 석탑들은 신라 하대에 들어
다소 침체된 석탑의 조형미를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일반형 석탑에 약간 변형된 조형미를 부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분황사 모전석탑을 계승한 전탑들도
통일신라시대에 계속 세워졌는데
아동의 신세동 칠층전탑, 동부동 오층전탑 등이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비록 소수이나마 고려시대까지 전탑및 모전석탑의 조영은 계속되었다.

| 글쓴 날짜 | 2008-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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