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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불교건축-가람과건축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2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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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불교건축

가람과 건축


절, 즉 불교사원에 있는 모든 구조물을 불교건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건축공간인 사원의 대지에서부터
하나하나의 건조물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건축적인 것을 통틀어
불교건축이라고 한다.

불교사원은 초기에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승원만 있었으나
불탑이 크게 성행하자 탑과 승원이 동시에 갖추어진 종합적인 사원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금당, 불전, 강당, 포살당, 후원, 요사채 등
스님들이 거주하면서 수행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건물이 세워졌다.
따라서 불교건축이라 하면 이러한 모든 구조물의
기본 배치에서부터 건물부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축적인 것을 일컫는다.

‘가람’이란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서 오랜 전부터
‘절’의 의미로 쓰여 왔던 말이다.
‘가람’은 사스크리트어 ‘상가람마’를 소리나는 대로 한역한 ‘승가람마’를 줄인 것이다.
‘승가’는 ‘대중’을 의미하며, ‘람마’는 ‘원’이란 뜻인데
이를 줄여 ‘가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람은 승가들이 한군데 모여 불도를 닦는 사찰을 의미하며
승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초의 사찰은 부처님께서 생전에 기거하시던
기원정사나 죽림정사였다고 볼 수 있으며
부처님이 입적하신 뒤에는 불탑을 중심으로 가람을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커다랗고 둥근 탑과 탑 주변을 두른 담장,
그리고 사방의 탑문 등이 웅장한 규모와 성스러운 장식으로 세워졌다.
사방의 탑문에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나
생전의 행적을 일러주는 여러 가지 조각그림이 등장하고
담장 안의 탑 둘레에는 계단과 탑돌이 길을 마련하여
‘우요삼잡’이라는 탑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관습이 생겨났다.
그리고 탑은 계속 사찰의 중심 건물로 세워지면서
하나 둘씩 부속건물을 갖게 되어 이른바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고,
탑과 가람의 형태도 지역과 나라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는 가람이 궁궐건축과
대등한 형국을 이룰 정도로 불교가 상당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궁궐에서만 허용되는 단청, 둥근 기둥의 사용 등이
가람에서도 그대로 허용되었으며
남북시대 이후로는 궁궐의 건물배치와 다를 다 없는
정연한 가람배치 형식이 정해졌다.
이는 불교를 받아들였던 중국의 제왕들이
부처님을 가르침의 왕이신 법왕으로 받들어서
궁궐의 조영제도와 똑같은 법식을 사찰건축에서도
채택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 건축물들은 인도식이 아닌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가람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중국식의 건축양식과 가람배치 방식을 따르게 되었다.
삼국시대 가람조영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인 372년에 불교가 공인되고
그로부터 3년 후인 375년에 이불란사와 초문사가 세워졌다.
뒤이어 평양에도 아홉 군데에 사찰이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의 가람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지만 않지만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팔각탑을 중심으로
동.서.북면의 세 곳에 법당이 배치된 일탑삼당식의
가람배치를 이루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제와 신라에서는 고구려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남북 일직선상에 앞쪽으로부터 중문.탑.금당(법당).강당의 순으로
일탑일당식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지의 경우는 나란히 세 곳에 각각 탑과
법당을 배치한 삼탑삼당식의 대규모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고,
황룡사지도 일탑삼당식의 가람배치로 발전된 것으로 보아
비록 고구려의 가람배치와 차이는 있으나
삼당가람이 계속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가람배치는 일탑일당식을 유지하였는데
이때부터는 탑보다는 법당의 규모가 훨씬 커지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불자들의 인식이 탑뿐만 아니라
불상을 중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탑이 법당 앞에서 짝을 이루어 양쪽에 세워지는
이른바 쌍탑가람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중국의 궁궐건축이나 사찰건축에서 대칭적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관습이 전래된 것이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로는 모든 사찰이
질서정연한 가람배치법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화엄사의 경우에는 법당(각황전)의 위쪽에 사사자삼층 석탑이 세워지고
각황전, 대웅전 등이 증축됨에 따라 두 법당 앞에 탑이 하나씩 세워져
가람의 확장과 자연적인 지세의 형편에 따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연적인 지형지세를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땅의 기운을 증시하는 풍수지리사상에 의하여
탑이 가람배치의 질서를 벗어나 산봉우리나 강 언덕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절 안의 건물들도 가람배치의 기본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스럼 배치방식을 따르게 되었다.

고려시대부터는 도교, 민간신앙 등이 불교에 혼합되어
절 안에 북두칠성의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각, 염라대왕을 비롯하여 저승의 시왕 등을 모시는
명부전, 우리나라 전통의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 등도 세워져
더욱 자유로워지고 포용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또한 별도의 법당과 부속건물들이 배치와 관계없이
적절한 장소에 세워지고 탑도 절을 벗어난 곳에 세워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성주사, 운주사 등지에서는 여러 탑이 세워지는
다탑가람이 조성된 적도 있으며
이와는 정반대로 송광사와 같은 명찰에서는 탑을 조성하지 않기도 하였다.
따라서 가람 배치면에 있어서도 우리 민족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한국식의 민족종교로 토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 가람의 분위기는 비록 활발하지는 못하였지만
조선시대의 가람에서도 그래도 계승되었다.

평지가람.산지가람

가람의 배치와 구조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사찰은
평지가람과 산지가람의 두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평지가람은 평지에 세워진 사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로부터 중요한 사찰들은 왕도나 고을 한복판의 평지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평지가람 중에는 대규모의 사찰들이 많았는데
경주의 황룡사터, 익산의 미륵사 터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평지가람은 궁궐건축의 중문.정전.회랑 등의 구조와 유사하게
사찰의 건물이 배치되어 궁궐만큼이나 질서있고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산지가람은 산중에 터를 잡은 사찰이다.
산지가람에서는 기본적인 가람의 질서를 존중하되
산세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안에 부속건물들을 조성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여러 단의 축대를 쌓아
높낮이가 서로 다르게 터를 다지고
적절히 건물을 배치하게 되는데
때로는 진입로가 꺾이거나 휘어지고 사찰의 전경도
똑바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에 절 입구로부터 일주문.천왕문.문루 등을 거칠 때마다
절 안의 광경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사찰의 대부분은 이러한 산지가람을 이루고 있으며
건물의 규모와 공간의 배치에서는 산세와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부석사.화엄사.영암사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지가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지가람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전통건축과
주변 환경을 잘 간직해온 문화유산이며
고귀하게 보전되어야 할 성보라고 할 수 있다.

| 글쓴 날짜 | 2008-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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