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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불교조각 -①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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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불교조각

불교조각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불상을 포함하여
보살, 나한, 명왕, 천부 등의 모든 상을 말한다.
불교조각은 인도에서 석가모니불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한 부처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근본불교에서 대승불교시대로 접어들면서
이타행의 실천이 강조되고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많은 불보살들이 출현했다.
자연 불교조각도 아미타불, 미륵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등을 비롯하여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 많은 보살상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 후 각 나라의 토속신앙과 습합되면서 불교조각은
더욱 풍성해졌고 일반조각에 대비되는 뚜렷한 하나의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불교조각은 일반적으로 여래상.보살상.신장상.나한 및 조사상등으로 구분한다.
여래상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최고의 경지인 깨달은 이를 상징하는 것이고,
보살상은 깨달음은 얻었지만 아직 중생 제도를 위해
부처님 되기를 잠시 보류한 이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상과 보살상은 시각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래상은 32상 80종호라는 규범에 의해 조성되었고
전륜성왕이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남성적인 외모를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살상은 여인의 모습에 가깝다.
보살상은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몸에는 장신구와 하늘거리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다.
나한상은 깊은 산 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나이 많은 수행자,
즉 노스님을 연상하면 좋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선의 모습이 바로 나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신장상은 주로 무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천왕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래상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인도의 북쪽 카필라국의 태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가 발전하여 대승불교시대가 되면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게 되고 따라서 다양한 여래상이 조성된다.
이들 무수한 여래상들의 명칭은 다양하지만 모습에 있어서는
수인이나 세부의 약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부처님 가운데 석가여래.아미타여래.약사여래
.비로자나여래.미륵여래 등이 많이 조성되었다.

여래상은 수인(手印)과 협시보살에 의해 구분된다.
부처님의 수인은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손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표현한 것이다.
교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부처님의 손모양을 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수인은 여래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약사여래와 미륵불은 손에 지물(地物)을 가지고 있어
다른 여래상들과 구분된다.
보살상은 불상과 달리 대부분 손에 경전.연꽃.정병.염주.지팡이.금강령 등
다양한 물건을 갖는다.

불상처럼 지물없이 손모양만 달리하는 것을
수인(手印)이라 하고, 보살상처럼 지물을 갖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한다.
이 둘을 합하여 인계(印契)라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무드라(mudra)라 한다.



석가여래상

부처님은 2,500여 년 전에 중인도의 카필라국에 태어났으며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분이다.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모든 번뇌를 단숨에 끊어버리고
위대한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큰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하였으며,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 부르게 되었다.

석가여래의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은
반야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는 행원(行願)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대표적이다.
석가여래의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
또는 아미타여래와 미륵불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일생은 여덟 가지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야부인의 태몽, 탄생, 명상, 출가, 설산수도, 성도,
최초의 설법, 열반 등이 그것으로 불교미술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다.
석가여래가 짓는 수인은 천지인(天地人),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설법인(說法印), 시무외여원인(施無畏輿願印) 등이 있다.

천지인(天地人)은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수인이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하는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고 외쳤다.
이때의 아기 부처님은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향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아기 부처님 목욕시키는 의식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 모습이다.

선정인(禪定印)은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이다.
왼손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어 놓은 형식이다.
부처님은 출가 후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오랜 기간에 걸친 고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키스탄의 라흐르박물관 고행상은 선정인을 짓고 있는 대표적인 여래상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부처님이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수행을 지신(地神)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이다.
선정인 상태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불상에서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상이 가장 많으며,
석굴암 부처님의 손모양이 대표적이다.
보통 불교미술에서는 이 항마의 장면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설법인(說法印)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지은 수인이다.
부처님은 자신이 까달은 경지가 너무 심오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였지만
범천의 간청으로 법을 설할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이전에 함께 고행하던 다섯 수행자들을 찾아나섰다.
녹야원에 도착한 부처님은 다섯 수행자를 위해
처음으로 법을 설했는데 이것을 일컬어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처음으로 돌렸다는 의미이다.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있는 사르나트고고박물관
소장의 초전법륜상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그 예가 많지 않으며,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이 대표적이다.

시무외여원인(施無畏輿願印)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이 합쳐진 것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표현한 수인이다.
시무외인은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이 두 수인은 처음에는 각각 표현되었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시무외여원인으로 함께 표현되었다.

우리나라의 시무외여원인 불상은 주로 삼국시대의 불상에 나타나며
석가여래상뿐만 아니라 다른 여래상에도 표현된다.
어느 부처님이나 두루 취하는 손모양이기 때문에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아미타여래상

아미타여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로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고자 오시는 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바 붓다’ 혹은 ‘아미타유스 붓다’로도 불린다.
아미타바는 한량없는 빛을, 아미타유스는 한량없는 수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자를 무량광불, 후자를 무량수불이라 한다.

아미타여래가 봉안된 전각을 무량수전, 극락전, 미타전이라 한다,
좌우 협시보살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가장 보편적이나
고려시대부터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되기도 한다.

아미타여래의 수인은 아미타정인과 아미타여래구품인이 대표적이다.
부처님의 가장 큰 바람은 모든 중생을 자비로써 구제하는 것인데,
중생들이란 그 근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알맞은 설법이 필요하였다.
아미타여래구품인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품과 생을
상배.중배.하배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중하 3품으로 구분하는
구품왕생(九品往生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미타여래구품인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주로 중품하생인을 한 불상이 많다.
충남 서산의 문수사 아미타여래좌상은 그 한 예로,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의 모습이다.



약사여래상

약사신앙은 약사유리광여래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하는
약사여래가 보살이었을 때 서원한 12대원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
중생들의 병고 내지는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는
현세적 소망을 성취하고 마침내는 해탈하고자 하는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 신앙체계이다.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은 약사전 또는 유리보전이라 하며,
좌우 협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이와 함께 약사 12대원을 상징하는 약사 12신장을 거느리고 있다.

약사여래상의 가장 큰 특징은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것으로 그 형태는 보주와 약그릇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약사여래상의 특징은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올려놓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독특한 수인은 ⟪약사여래본원공덕경⟫의 내용처럼
약사여래의 이름만 들어도 모든 병환이 치유되고 번뇌가 고갈되는 까닭에
한 손은 마군이나 병마를 격파하고,
한 손에는 약을 가지고 병을 치유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즉 석가여래가 깨달았을 때 마군을 항복받는 것이나
약사여래가 병마를 항복받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석가여래의 항마촉지인을 약사여래에도 적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로자나여래상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여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이라 한다.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이라 한다.
좌우 협시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지만,
노사나불과 석가여래가 협시하는 삼신불이 모셔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766년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을 시작으로
9세기 중엽부터 반세기 동안 많이 조성되었다.
불국사, 보림사, 동화사, 도피안사 등의 비로자나불이 유명하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짓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먹을 가슴에서 아래, 위로 포개고
밑의 왼손 검지를 오른손 주먹이 감싼 모양이다.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님, 미혹함과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손모양을 통해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모양의 지권인은 고려시대 후기부터는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권인(券印)으로 바뀌게 된다.



미륵여래상

미륵불은 메시아로서 널리 알려진 미래불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미륵불은 미래불로 신앙되는 동시에 미륵보살로서 신앙되어왔다.
미륵불(미륵보살)의 세상은 그 어떤 고통도 없는 낙원이며,
인간의 수명은 8만 8천이며, 생각만 해도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미륵불을 모신 전각은 미륵전(彌勒殿), 용화전(龍華殿),
자씨전(慈氏殿)이라고 하며, 금산사와 법주사는 미륵도량으로 유명하다.

각 시대마다 미륵신앙에 근거한
미륵보살과 미륵불을 만들어 정성껏 봉안해왔다.
삼국시대에는 ⟪미륵상생경⟫에 기초하여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 비유되는,
사색에 잠긴 모습의 미륵보살상을 만들었다.
국보 78호과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도솔천에서 끊임없이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륵상생경⟫에는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보배의 묘한 탑을 일으켜 사리를 공양’하고,
‘보배로써 천관을 장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경전의 내용을 반영하듯 미륵불은 머리에는 갓을 쓰고
손에는 용화수 꽃봉오리나 꽃가지를 들고 있다.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법회 장면을 상징하여
손에 용화수 꽃을 들고 있는 것이다.
법회 장소가 용화수 아랫니기 때문에
야외에 봉안되는 경우가 많고 불상의 크기도 웅대하다.

| 글쓴 날짜 | 2007-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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